최근 몇 년간 금융소비자들의 공분을 일으켜 단체소송까지 감행하게 했던 사건들이다. 복잡한 금융상품 판매가 늘어나면서 금융과 실생활의 관계가 밀접해짐에 따라 소송을 비롯한 금융 관련 분쟁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 같은 소송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소비자들의 패배로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일례로 기업어음(CP) 판매에 나선 지 10일 만에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바람에 막대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판매사인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약 15건의 소송 중 12건이 패소 판결을 받았다. 통화옵션상품인 키코의 불공정 판매 여부를 둘러싸고 은행과 중소기업들이 5년 넘게 진행됐던 소송 역시 지난해 9월 대법원이 "키코 계약은 불공정거래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며 사실상 은행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은행들이 대출비용을 고객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제기된 '근저당 설정비 반환 소송'도 지금까지 진행된 240여건의 소송 가운데 8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은행의 승리로 끝났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금융소비자 중심의 법과 제도가 미흡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소비자의 권리 찾기를 위해 조정·소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문을 두드리는' 시도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지금 같은 법 체계에서 소비자들의 승리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소비자들이 피해 구제를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거론되는 것이 입증책임의 전환이다. 현재는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 측이 피해를 당한 사실과 그 정도, 가해자의 불법행위 유무와 피해와의 인과관계까지 모조리 입증해야 하고 이를 증명하지 못할 경우 패소하게 된다. 그러나 정보의 격차나 전문지식의 차이 등이 현격한 금융소송에서는 투자자가 은행의 불법행위나 고의 등을 입증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이 경우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쪽에서 '잘못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입증책임의 전환은 의료소송이나 제조물배상책임법 등에서는 이미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금융소비자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한누리의 전영준 변호사는 "소비자들은 피해를 당한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금융사가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불법행위를 고의 혹은 과실로 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며 "금융사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 제출을 요구한다고 해도 상대가 '그런 자료는 없다'고 할 경우 그 발언의 진위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사가 제공해주는 정보만을 가지고 금융사의 잘못을 밝혀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집단소송의 도입도 소비자단체 등이 요구하는 것이다. 금융소비자 피해의 경우 전체 피해금액은 크지만 인당 피해금액은 소액인 경우가 많다. 소송비용보다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적어 '소송 실익'이 없다는 말이다. 조남희 대표는 "소송 실익이 적다 보니 소비자 편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반면 금융사 측은 거액의 수임료로 대형 로펌과 연구소 등을 선임해 자신들에 유리한 논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대표자 1인 혹은 소수만이 소송을 하고 이길 경우 피해자 전체가 구제 받는 집단소송제를 더 활성화할 경우 이 같은 비대칭 구조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법원의 태도 변화 역시 전문가들이 요구하는 바다. 한 변호사는 "좀 더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적극적인 법 해석이 요구되는 상황인데 많은 판사들이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만을 고집하는 듯해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