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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의 민낯이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금융 부문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기여를 하지 못합니다. 금융회사 스스로 평판을 중시하고 작은 규칙부터 지켜야 금융산업이 살아날 것입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22일 열린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작심한 듯 쓴소리를 던졌다. 조찬강연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발언 수위가 높았다. 한편으로는 강연자료 말미에 전화번호를 공개하면서 시장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자청했다.
올해 어느 때보다 잦았던 금융사고 여파로 홍역을 치른 최 원장은 자신이 금융계에 던질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해 전날 자정까지도 강연자료를 다듬었다. 그래서인지 총 28쪽에 달하는 파워포인트(PPT) 자료는 밀도가 높았고 국내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담겨 있었다.
최 원장은 금융의 기초질서가 확립되지 않는 이상 정체기에 빠진 국내 금융산업이 도약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금융회사 내부통제 시스템과 시장규율이 바로잡히지 않아 감독당국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개탄했다. 금융계 CEO들은 최 원장의 지적에 얼굴이 다소 굳어지기도 했지만 상당수가 공감대를 표시했다.
◇훼손된 금융질서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다=최 원장은 한국의 국가경쟁력과 한국 금융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비교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금융경쟁력 평가에서 한국(29위)이 태국(21위)보다도 뒤처지고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에서는 순위가 불과 80위에 그치는 현실을 꼬집었다.
최 원장은 "IMD의 평가 등에 일부 객관성 논란이 있을 수는 있으나 한국의 금융경쟁력은 국가경쟁력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며 "이 때문에 금융 부문이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기여를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산업이 도태된 근본적 이유로 최 원장은 '훼손된 금융질서'를 꼽았다.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금융 선진국들은 우리에 비해 금융질서에 대한 준수 노력이 상당히 앞서 있다. 우리는 금융규제 준수 노력이 밑바닥이고 전체적인 경쟁력 밑바닥이다. 금융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매우 큰 영역이기 때문에 금융질서가 확립되지 않는 이상 신뢰가 쌓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2014년 바젤위원회가 발표한 △자기규율 △시장규율 △감독규율 등 금융질서 유지를 위한 '3개의 축'을 제시하며 국내 금융산업의 현실을 분석했다. 그는 "금융산업은 신뢰에 기초해 시장이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는 규제나 법규 이런 물리적 규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며 "자기규율인 내부통제와 시장규율이 작동하지 않아 감독당국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금감원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고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한국 금융의 부끄러운 민낯…좀처럼 변하지 않는다=최 원장은 최근에 금감원이 검사에 나섰던 다양한 금융회사 영업현장을 사례로 들며 국내 금융산업 전반에서 금융질서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반기 통계만 봐도 증권회사의 임직원이 하루 평균 10회 이상 자기매매를 하고 심지어 많은 경우는 최대 매매횟수가 6개월 동안 2만3,000여건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법규 위반 여부를 떠나 한국 금융의 민낯이 너무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했다.
올 초 민원 다발 금융회사에 대해 금감원이 '빨간 딱지'를 붙이는 강수를 둔 배경도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소비자 보호 실태 평가하고 있는데 문제는 CEO들의 관심이 없습니다. 꼴찌인 곳은 계속 꼴찌를 해요. 그래서 올 4월 빨간 딱지를 붙였는데 솔직히 말해 효과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금융소비자를 왜 보호해야 하는지 당위성에 대해 CEO들이 생각했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부작용보다는 기대효과가 높았다고 봅니다."
금융계 CEO 보수 등 민감한 사안과 관련해서도 엇갈리는 금융권 내외부의 시각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 보수 체계를 개편해 40% 정도를 줄였는데 금융권에서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런데 밖에서는 여전히 성과와 무관한 고연봉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금융계가 호황을 누렸던 익숙한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서만이 외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감독당국도 확 바뀔 것…언제든지 전화해달라=최 원장은 그러나 모든 부분을 금융회사에 대한 책임으로 돌리지는 않았다. 강연 중간중간 "시장에 심려를 끼친 것은 송구스럽다"며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반성도 잊지 않았다.
그는 "감독당국이 뒷북 치기나 관행적인 검사를 한다는 지적도 잘 듣고 있다"며 "다만 앞으로 금감원은 사후에서 사전예방 방식으로, 또 관행 중심에서 현장 중심으로 감독 방향을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차원에서 최 원장은 "시장에서 금융상품을 만드는 단계부터 파는 단계까지 모든 과정에서 하나하나 작은 정보를 취합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석하는 사전예방금융감독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 원장은 이 같은 노력을 통해 금융회사 내부에서 문제점이 최대한 해결되고 감독당국은 최후에 나서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동성 위기에서 한국은행이 최후에야 나서는 것처럼 감독당국도 시장의 보루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부가 통제되고 소비자에게 성심을 다하는 혁신만 된다면 빅 리즌(big reason)이 있어도 스몰 리절트(small result)로 금융사고를 막을 수 있다"며 "금융업계 스스로 윤리와 평판을 중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특히 강연 말미에는 PPT 자료를 통해 자신의 e메일과 휴대폰번호를 공개하면서 경직됐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기도 했다. 최 원장은 "금융이 대한민국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스스로 노력한다면 제재나 이런 애로사항은 듣고 고민을 나누겠다. 언제든지 전화해달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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