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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펀드시장 질서 누가 흐리나

오철수<증권부 차장>

“주가가 1,000포인트를 훌쩍 넘었지만 적립식 펀드는 지금 가입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도 지난해 12월에 하나 가입했는데 수익률이 벌써 65%나 됩니다.” 지난 11일 오후 여의도에 있는 한 은행지점의 직원은 일을 보러 온 고객을 상대로 적립식 펀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 직원은 신문 스크랩과 펀드의 과거 수익률이 게재된 안내서를 여기저기 들춰가며 적립식 펀드의 장점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래도 고객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지 책상 안에서 자신이 가입했다는 펀드 통장을 꺼내 보여주며 3개월여 만에 수익률이 60%대에 달한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은행권에 적립식 펀드 판매 열풍이 불고 있다. 연초부터 외국계와의 생존경쟁을 ‘전쟁’이라는 삭막한 단어로 표현했던 은행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적립금 가운데 매년 1.7% 정도를 ‘보수’(수수료)로 챙길 수 있는 적립식 펀드는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다. 문제는 은행들이 적립식 펀드를 팔면서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적립식 펀드도 투자상품이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할 경우 손해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객들이 은행에서 펀드의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쉽지 않다. 운용상황이나 투자전략 등 펀드 가입시 알아야 할 사항도 마찬가지다. 은행 직원들은 그저 우리 주가가 과거 80년대 미국처럼 대세상승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등 장밋빛 전망으로 고객을 유혹하기에 바쁘다. 은행들은 과거 외환위기 이후의 뮤추얼 펀드 열풍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당시 낙관 일변도의 증시 전망에 현혹돼 몇달 만에 10조원이 넘는 돈이 증시로 몰렸지만 그 이후 주가하락에 실망한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 후유증으로 국내 자본시장은 5~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이 당장의 수익에 급급해 투자자의 눈과 귀를 가린다면 자신들의 이익에도, 자본시장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은행들은 작은 이익 때문에 시장의 신뢰에 금이 가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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