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노예'는 1940년 미래학자 벅민스터 플러가 만든 말이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기계를 에너지 노예라고 불렀다. 연료만 있으면 기계는 늙지 않고 쉼 없이 가동된다. 저자는"1850년에 오래도록 인간사회를 지탱했던 야만적 노예제도가 폐지 됐지만 대신 석탄과 석유로 가동되는 수백억의 무생물 노예가 등장했다"고 꼬집는다.
기계문명은 끝없는 성장신화를 자극했고, 인류의 정신과 사고 체계를 왜곡시켰다. 나아가 지구 생태계마저 흔들어 놓았다. 농업은 산업화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식물들은 가차없이 땅에서 뽑혀나갔다. 어군탐지기와 위성데이터 등 중장비로 무장한 쌍끌이 어업으로 인해 바다는 오염되고 하위 생물군은 씨가 말랐다. 끊임없이 질주할 것만 같았던 석유 자본주의와 기계문명은 그렇게 조금씩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륙에서 양질의 원유가 고갈되자 기업들은 앞다퉈 먼 바다로 진출해 천연가스를 채취 했지만 품질은 물론 생산성은 예전의 것보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태양열 혹은 풍력 등 각종 재생에너지로 석유를 대체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이에 맞게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어 최첨단 기술의 대체 에너지 생산 시설을 가동해봤다. 하지만, 화석에너지 발전 효율의 3분의1에도 못 미치는 씁쓸한 현실만 마주할 뿐이다.
현대사회가 마주한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저자는"2011년 일본 센다이 지역 대지진 직후 언론은 위험천만한 원자력발전소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지만 정작 이 재앙으로 맨 얼굴이 드러난 것은 석유를 연료로 삼아 정점에 달했다가 이내 그 뒷심을 잃어버린 일본 경제구조의 취약성이었다"고 꼬집는다.
그렇다면 먹구름 낀 미래를 피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에너지 노예 해방운동'을 벌여 새로운 미래를 이끌자고 역설한다."19세기 지각 있는 사람들이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노예해방을 이끌어냈듯, 분별력 있는 21세기 사람이라면 에너지 노예에 예속된 우리 삶의 야만성을 냉정히 살피고 낭비 중독에 빠진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간파해 이제까지의 생활방식과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탐사보도에 정통한 언론인으로, 책을 통해 이렇듯 무분별하게 화석연료를 낭비하는 인류 사회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화석연료를 발견하면서 화려하게 꽃피운 기계문명을 조망함과 동시에 이 기계문명이 빚어낸 위태로운 현대 사회의 풍경 등을 다양한 잣대로 분석했다. 1만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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