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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사람이 함께 하는 건강한 꿈
지금까지의 글들을 꿰고 있는 주제는 차와 만남을 통해 찾아보는 ‘건강’입니다. 차와 건강이라고 했지만, 건강은 차와 사람,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차가 건강해야 그것을 마시는 사람이 건강할 수 있고, 차를 만드는 사람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만들어진 차도 건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 상태나 마음가짐이 다르면 같은 차라도 맛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환경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이나 몸 상태가 달라지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그 신체가 어떤 상태이고 어떤 흐름을 이어왔는가에 따라 사람의 상태도 일정한 편향이나 관성을 띠게 됩니다. 누구나 타고날 때 기본 바탕이 있고, 여기에 수 십 년에 걸쳐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과 먹는 음식 등의 생활이 누적되어 왔으니까요. 이처럼 일정한 편향에 치우쳐 있는 상태를 가리켜 ‘체질(體質)’이라고 합니다.
건강은 자신의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건(健)은 일종의 건축 구조물처럼 돼 있는 몸의 시스템을 가리키고, 강(康)은 그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힘을 말합니다. 내 몸을 유지하고 있는 생김새와 이 몸을 유지하는 에너지, 건강(健康)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입니다. “강녕하셨습니까”라는 고풍스런 인사말은 곧 내 몸 상태를 유지하는 힘의 평안함 정도를 묻는 게 되겠지요.
건강이라는 것에도 다양한 척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심(靜心)과 정신(正身)처럼 수양에 대한 것도 있을 것이며, 사람이 갖는 사회성에 대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지내는 사회에서 편안하게 사람을 만난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건강의 척도가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스스로가 하는 일도 떳떳해야 하고, 그 일을 하는 과정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건강은 우리 몸의 구조와 흐름에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차의 건강성을 좌우하는 산지와 시기 및 제차방법
최근 질병 원인과 관련해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활성산소입니다. 이게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까지 하죠. 활성산소가 몸 속의 세포를 공격하고, 그렇게 뇌나 혈관, 피부 등 공격받은 인체 부위가 손상되면 병이 되고, 이 흐름이 이어지면 곧 노화라고도 합니다.
차가 우리 몸에 좋다는 현대적인 연구 결과도 이 부분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차 속의 탄닌(카테킨류) 등이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 작용에 뛰어나다는 것, 그 결과 항암이나 유전자변이에 대한 억제 혹은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데이터는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차를 마시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차에서 얻는 도움의 전부도 아닐 거고요. 차는 생활음료라고 했는데요. 활성산소가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이 말하는 바를 살펴도 그렇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습관 그리고 이로 인한 항산화 시스템의 불량을 말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바로 ‘병의 원인이라는 게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생활 전반에 있다’는 것이죠.
천연의 찻잎은 80% 정도가 수분입니다. 나머지는 고체 형태의 유기물질로 구성돼 있습니다. 찻잎도 엽록소가 있어 생체 작용을 진행하죠. 햇빛을 받아들이는 한편, 뿌리로부터 수분과 영양분을 받아 에너지를 생성하기도 하고 저장하기도 합니다. 찻잎이 나는 시기에 따라 엽록소를 비롯한 성분들의 성숙 정도가 달라집니다. 우전차(雨前茶)와 명전차(明前茶) 그리고 봄차와 가을차 등 채엽 시기를 기준으로 나누는 까닭도 무엇보다 엽록소 등 성분의 정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찻잎이 좋다고 해도 날 것으로는 먹지 않습니다.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이 많기 때문인데요. 천연의 생잎 속에 있는 성분들은 제차과정을 통해 변해 갑니다. 이 과정을 넓은 의미의 발효(醱酵)라고 합니다. 찻잎이 지닌 여러 유기물질은 제차과정을 통해 새로운 성질의 유기물로 바뀌고 동시에 에너지도 생성됩니다. 그 결과, 변화된 차의 성질에 기초해 다양한 차를 오행(五行)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현재 중국 차계에서는 제차 방법과 그로 인해 변한 찻잎 성분에 따라 6대 차류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제차과정에서 엽록소가 줄어드는 정도와 탄닌 등 성분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찻잎에서 차로 변하는 과정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천연 상태의 찻잎, 제차과정을 거치면서 달라지는 찻잎, 그리고 보관과정을 거치면서 숙성 변화하는 찻잎 등의 단계가 있습니다. 마침내 물을 부어 차로 우려내는 단계에 이르러, 변한 차들의 갈래에 따라 탕색과 향기와 맛이 달라지고, 차의 성질 또한 달라진 걸 확인하게 됩니다.
차에도 떼루아르(토질)와 빈티지(생산년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차나무의 생장 토질과 기후 등에 따라 그 성분과 성질에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요. 차나무 산지와 찻잎의 종류, 채엽 시기와 제차 방법 그리고 보관 방법에 따라 차의 떼루아르와 빈티지는 정해집니다. 이것은 차를 마시는 기준이면서 유통시키고 구입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지역, 어느 시기,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보관했는지! 이 정도는 기본으로 들어가 있어야 할 상품으로서 차의 정보라 할 것입니다.
사람과 차에 있는 뿌리와 말단
발효는 부패와 동일한 작용인데, 그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사람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인데요. 건강은 곧 바른 인체학이라는 기준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다양한 사물을 이해하고 변화 과정을 밟아 가는데, 이와 관련하여 오래된 관점이 있습니다. “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라는 말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물건에는 뿌리와 말단이 있고, 진행되는 모든 일에는 마침과 시작이 있다는 것인데요. 앞뒤로 많은 설명이 이어져야 할 구절입니다.
우리 몸에 뿌리와 말단을 구별할 수 있다면, 일의 선후도 잡혀질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뿌리가 있다는 것, 그곳은 기본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겠죠. 그리고 이 뿌리를 중심으로 신체의 전후 좌우 그리고 내외가 서로 균형을 맞추는 게 이상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차나무의 뿌리와 잎이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면서 생체 리듬을 유지하듯이, 사람의 몸도 뿌리를 중심으로 가슴과 머리 그리고 사지말단과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면서 몸의 리듬을 유지하겠지요. 이 상태를 두고 아름다운 몸, 건강한 몸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뿌리는 ‘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공간이 배였던 것이고, 그래서 배는 언제나 따뜻해야 했습니다. 우리 몸을 이끄는 이성적인 지휘를 하는 곳은 머리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언제나 열 받지 않고 시원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가슴은 배와 머리 사이에서 조정하고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무수한 체질론 바탕에는 이처럼, 배와 가슴과 머리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과 역할 운동이 전제돼 있었습니다. 이 바탕에서 나의 편향됨을 살피고 수정해 가는 것, 이것이 건강 관련 실천론이었습니다.
21세기 건강과 관련해 차를 이야기하는 일은, 곧 21세기 우리 인체를 이야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몸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체질론도 점차 현실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체질의 중심이 되는 우리의 뿌리가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할 배가 차갑고, 시원한 상태로 있어야 할 머리는 열 받아 뜨겁고, 사통팔달 소통의 역할을 하는 가슴은 답답하게 막혀 있는 상태, 이것이 주변에서 자주 보고 느끼는 인체의 증상입니다.
차와 건강에 대한 관계 설명은 지금도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차탄닌이 하는 작용들, 예를 들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독소를 제거하고 면역력을 강화시키고, 항산화작용을 일으키며 노화를 방지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카페인이 체지방을 제거하고 각성제의 성격을 지니며, 차아미노산이 자율신경을 활성화하고 신경을 안정시킨다는 이야기 등등… 빽빽한 수풀 사이를 지나는 것 같은 숱한 이야기는 거대한 산과 같은 우리 인체론으로 귀결될 필요가 있습니다.
차가 우리에게 복원력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는, 우리 몸의 기초인 본말을 조절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식품을 화해시키고, 독성을 제거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등의 작용들! 이 모두는 결국 배를 따뜻하게, 머리는 시원하게, 가슴은 편안하게 한다는 전통적 인체론이 빚어낸 기준들입니다. 이런 전제에서만 차에 대한 이야기는 더 진행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다루게 될 제차공정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본부장
(이번 글의 기초가 되는 인체와 관련한 이야기는 박현 선생님의 <나를 다시하는 동양학>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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