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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림으로 풀어낸 '이십사시품' 미학

■궁극의 시학(안대회 지음, 문학동네 펴냄)


중국 시학(詩學) 가운데 난해하면서도 대중적이며 논쟁적인 시학서로 꼽히는 것이 있다. 당나라 말 시인 사공도(司空圖·837-908)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이십사시품'(이하 시품)이다.'시품'은 스물 네 개의 풍격(風格)을 일종의 시로 표현해'시로 시를 말한'시학 텍스트다. 예를 들어 스물 네 개 풍격 중 세속을 초월한 고상함과 고풍스러움을 뜻하는'고고'(高古) 를 시로 표현하면서 사공도는 "…동쪽 하늘에서 달이 떠오르니(月出東斗·월출동두)/ 시원한 바람이 그 뒤를 따라 분다(好風相從·호풍상종) / 화산의 밤하늘엔 푸른 기운이 감돌고(太華夜碧·태화야벽) / 사람들 귀에는 맑은 종소리 들려온다(人聞淸鍾·인문청종)…"고 했다.

'시품'의 미학은 단순히 시의 풀이에 그치지 않고 그림과 글씨로 확장됐고, 인간 삶의 문제와도 깊숙하게 관련을 맺었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회화에서였다.'시품'은 풍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생생한 장면 묘사로 풍격을 제시했는데, 이는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시품의 세 번째 풍격인'섬농'(纖穠)은 복사꽃이 활짝 핀 봄날 아름다운 여인이 나들이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를 두고 18세기 조선 전기에 활동한 화가 겸재 정선의'사공도시품첩'에는 버드나무 숲과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을 배경으로 옷을 화사하게 차려 입은 여인이 나무에 두루마리 종이를 놓고 붓을 들어 무언가 쓰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반면 청나라 화가 반시직이 그린 그림에는 미인을 뺀 채 복사꽃 가지 끝에 꾀꼬리가 앉은 화조화로 표현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책을 통해'시품'이 단순한 시학의 범위를 넘어 이처럼 회화와 서예 등에도 깊숙한 영향을 미쳤음을 찬찬히 설명해 나간다. 정선, 반시직 등 화가가 그린 그림에 대한 분석 외에도'시품'이 다룬 추상적인 언어를 놓고 이광사, 신위, 김정희, 오세창 등 조선 시대 지성인들이 정서적으로 교감한 흔적도 추적한다.



안 교수는"한국의 문인, 화가들이 '시품'을 적극적으로 그림, 글씨, 인장으로 표현했고 이들 작품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오고 있다"며 "'시품'은 분명히 중국 미학의 정수이지만 조선 후기 우리 문예를 이해하고자 할 때도 빠뜨려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문학동네의'우리 시대의 명강의'세 번째 시리즈다. 안 교수가 2011년 한 해 동안 매주 금요일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http://cafe.naver.com/mhdn)에 연재한 글을 엮었다. 3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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