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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로마자표기법 개정 고집, 왜?

제14차 국가경쟁력강화회의서 주장… 문화부ㆍ국어원 난색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강만수(사진) 위원장이 자신의 오랜 ‘숙원’ 사업이던 ‘로마자표기법 개정안’을 밀어붙여 눈총을 사고 있다. 강 위원장은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4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지난 2000년 개정했던 영문표기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기자들을 상대로 사전 브리핑을 갖고 “현행 로마자표기법은 매우 혼란스럽기 때문에 개편해야 한다”면서 “소설가 이문열씨의 경우 영문 표기가 10개 이상 혼용돼 외국인들은 ‘이 이문열하고 저 이문열이 같은 사람이냐고 지적할 정도”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지금은 영문 표기방식이 지나치게 한국식 표현이라는 점을 꼽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강 위원장의 이 같은 신념은 2000년대 초반 재경부 차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당시 신문지면상에서 국립국어원과 로마자표기법과 관련해 격론을 벌였을 만큼 오래됐다. 당시 강 위원장은 새로운 표기법은 물론 기존의 것에 반대한다며 국립국어원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이후 지난해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에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검토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강 위원장의 굳은 신념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강 위원장의 견해를 내놓고 반박하지 못하면서도 내심 불쾌하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문화부 한 관계자는 로마자표기법 개정안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게 없다. 향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개정할지 현형 규범을 따라야 할 지 결정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지난 2000년 개정 당시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표기법을 바꿨는데 불과 10년도 안돼서 다시 표기법을 바꿀 경우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극도로 신중한 입장이다. 이와 달리 강 위원장이 언론플레이로 비쳐질 수 있는 브리핑을 연 것에 대해 경솔한 처사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강 위원장이 언론을 상대로 로마자표기법 개정안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지만, 정작 문화부는 물론 국어원과 사전 조율 작업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재일 국립국어원 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강만수 위원장과 대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번 개정안과 관련해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은 없다”면서 “언어 정책은 국민생활에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규범을 바꾸는 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국어원 관계자는 “로마자표기법을 바꾸자는 의견은 국어원 내부에서 제기된 것은 아니다”면서 “규범의 안정성을 위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하겠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부 관계자는 “강 위원장이 개인적인 소신으로 로마자표기법을 밀어붙이는 것 같은데 적지 않은 잡음이 일어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특히 표기법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나치게 영미권 중심의 발음을 적용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강 위원장이 자신의 소신을 지나치게 고집해 문화부와 국어원은 물론 전문가인 언어학자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 위원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도로교통표지판 교체와 공공기관 문서 교체 등에 3,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문화부와 국어원은 오는 25일 국립민속박문관에서 ‘성씨(姓氏)의 로마자 표기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해 바람직한 영문표기법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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