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구(37)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의 강의는 영어로 진행된다. 열역학ㆍ전산유체역학ㆍ수치해석 등 기초전공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늘 수강인원이 100명이 넘는다. 일반적으로 대형 영어강의는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외국어로 수업하는데다 인원이 많아 수업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05년 8월 임용된 윤 교수는 아홉 학기 동안 우수 강의평가 교수에게 주어지는 '석탑강의상'을 다섯 차례나 받았다. 지난해 2학기에는 개설한 두 과목 모두 우수 강의에 선정됐다. 윤 교수는 자신의 강의 스타일을 "올드 패션(old fashion)"이라고 규정했다. 필기 위주의 전통적인 강의 방식이어서 동료 교수들의 강의 방식에 비해 특별하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러한 필기 수업이 전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지루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또 영어수업인데도 불구하고 내용 전달이 완벽하고 학생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윤 교수의 강의철학을 높이 평가했다. ◇학생들 "완벽한 영어강의" 극찬=윤 교수는 강의 때 파워포인트(PPT)를 거의 쓰지 않고 필기 위주로 수업을 진행한다. 우선 판서한 내용을 노트에 필기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졸지 않게 되고 필기를 하면서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학생들이 PPT는 다소 동떨어진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필기한 노트는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더 애착이 간다고 얘기한다"면서 "쓰기 연습을 많이 시킨다"고 소개했다. 중간고사 때는 그때까지 배운 내용을 한장짜리 종이에 모두 적도록 한다. '크립 시트(crib sheet)'라고 불리는 이 종이는 시험 때도 갖고 들어갈 수 있다. '커닝 페이퍼(cunning paper)'가 될 수도 있지만 대신 다소 어려운 응용문제를 낸다. 이 시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배운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게 된다. 강의시간도 철저하게 지킨다. 수업 시작 5분 전 강의실에 위치하고 정시에 끝낸다. 강의준비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강의준비에 다소 소홀할 경우 동어 반복하는 경우가 잦고 결국 학생들의 집중도가 흐트러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강의 중간에 5분간 휴식 시간을 갖는데 이때 자신이 선곡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 강의에 몰입한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윤 교수는 "보통 3학점짜리 강의는 75분 수업을 두 번하게 되는데 상당히 긴 시간"이라면서 "휴식시간은 학생들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의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매번 출석을 체크하지 않고 두 차례 수업 중 한번은 퀴즈를 본다. 언제 퀴즈를 볼지 모르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을 빠지는 데 상당한 압박감을 느낀다. 물론 예ㆍ복습 효과도 있다. 퀴즈 점수가 성적에 반영되는 비율은 5%다. 퀴즈는 개념을 묻는 문제 2~3개를 내는데 감명 깊게 본 영화나 이상형을 묻기도 한다. 흥미로운 답은 다음 강의 때 소개한다. 이를 통해 교수ㆍ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이뤄지고 학생들은 동료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학생들은 윤 교수의 영어강의에 대부분 후한 점수를 준다. 한국인임에도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학생은 "이보다 더 완벽한 원어강의를 국내에서 또 들을 수 있을까 싶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고등학생 때 이민을 가 학부와 석ㆍ박사 과정을 모두 미국에서 마쳤다. 미국에서 학위를 딴 여느 젊은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영어가 능숙하지만 그는 되도록 정확한 발음으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둔다. ◇태양전지ㆍ화재방재 등 연구활동도 활발=윤 교수는 전공지식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의 때 '엘리트, 사회에 빚진 사람'등을 주제로 자신의 인생관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를 위해 강의 전에 스크립트를 미리 작성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그는 "학생 때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고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는데 학생들이 이를 답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면서 "강의시간에 딴 소리한다고 불만을 가지는 학생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윤 교수의 강의를 세 학기 연속으로 듣는다는 한 학생은 "교수님의 인생관ㆍ결혼관ㆍ연애관 등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면서 "가끔 철 지난 농담을 하시기도 하지만 수업시간에 잠시라도 웃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공대에서 강의 잘 하는 젊은 교수로 손꼽히지만 윤 교수는 연구활동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로켓 추진 및 스프레이 연소'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태양전지 및 에어로졸 연구실'을 이끌며 태양전지와 화재방재 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해마다 4~5편의 국제학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윤 교수는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둘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연구를 열심히 해야 강의 내용도 충실해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을 존중해야 교수도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 학생들을 존대한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존중은 학생들에게 좋은 품질의 강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윤 교수는 "학생은 고객이고 제 연봉은 그들이 주는 것"이라며 "고객에게 제대로 된 물건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1974년생. 미국 콜로라도 자원공과대학을 졸업하고 2002년 퍼듀대에서 우주항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샌디아국립연구소의 연구원을 거쳐 2005년 9월부터 고려대 기계공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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