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고성장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80여년 만에 초유의 저상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이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불황의 시대를 헤쳐나갈 충분한 준비가 안 돼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기업∙가계가 저마다 우려 속에 대책을 마련하는 데 분주하지만 특효약은 마땅히 없어 보인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래의 성장엔진을 찾고 기업들의 기를 살려 그 엔진이 끊임없이 가동되도록 해야 한다. 삼성그룹이 창조적 발상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책임을 강조하듯 기업들은 신사업∙신기술에 대해 관심과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체계를 보강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자본조달 구조는 회사채를 중심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회사채는 은행대출∙기업어음 등 다른 차입수단에 비해 대규모 자본의 장기적 공급능력 면에서 우월하다. 유동성 리스크의 관리가 중요한 시기에 가장 적합한 자본조달 수단이 된다. 다행히 그동안 회사채의 만기는 3년 이상으로 꾸준히 확대됐고 최근 상법개정으로 발행∙모집 제한이 폐지되고 기업실사와 수요예측 절차가 마련되는 등 발행여건도 크게 개선됐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시장에서 회사채 소화능력이다. 회사채 투자선호가 양극화되면서 중소∙벤처 기업 등 신용도가 낮은 많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기회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우량 대기업만으로 우리 경제가 험난한 저성장의 늪을 헤쳐나가기는 어렵다. 저신용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회사채 발행∙인수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그 출발점으로서 투자자(사채권자) 보호를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신용평가와 정보공시를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앞으로 '사채관리회사'에 의한 포괄적 채권관리 기능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올해 새로 도입된 사채관리회사는 기존의 모집수탁회사와는 달리 오로지 사채권자의 입장에서 채권관리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어느 때보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고 경제불황이 지속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회사채는 기업들이 투자와 성장의 계속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좋은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저성장의 늪이 깊고 넓을수록 더 많은 동력을 모아야 한다. 회사채시장 활성화에 좀 더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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