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의 '아들'(2007)의 여인 1역으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서우(24)에게는 배우가 되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없었다.
현 소속사의 대표와 사적으로 친분이 있어서 소속사 사무실에 몇 번 놀러 가다보니 오디션 기회가 왔고 모제과의 빙과류 광고와 MBC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에서 엉뚱한 캐릭터를 선보인 후에 단박에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버렸다.
"데뷔할 때 큰 포부나 욕심이 없었기에 연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의욕이 넘쳐서 시작했다면 부담도 많았겠죠. '김치 치즈 스마일' 첫 방송 때는 정말 발연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모자랐어요. 함께 출연한 (유)연지 언니가 항상 잘한다고 칭찬해줘서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죠."
유달리 앳된 외모와 장난기와 우울함이 혼재된 커다란 눈망울로 영화 '미쓰 홍당무'(2008)의 여중생 서종희 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낸 후에는 무려 국내 8개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거머쥐는 영광도 안았다.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워 본 적 없는 서우가 엉뚱하고 고집 센 서종희를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100% 캐릭터에 녹아들려는 노력 때문이었다.
"사실 '미스 홍당무'의 연기는 전부 이경미 감독님이 가르쳐 주신 거예요. 공효진 언니나 황우슬혜 언니는 두 분 다 연기 경험이 많은 분들이기에 항상 저만 불러서 리딩 연습을 시키셨어요. 자꾸 부르셔서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감독님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제 얘기를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게 저를 종미에게 가깝게 만들어 간 과정이었어요."
MBC 드라마 '탐나는 도다'의 장버진 역시 전작들처럼 서우의 발랄하고 엉뚱한 기존 이미지를 차용한 캐스팅이었다면 영화 '파주'에서 8년 동안 형부 중식(이선균)을 사랑한 은모 역은 외로움과 욕망이라는 내면의 숨겨진 모습을 끌어냈다.
"'파주'는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에요. '탐나는 도다'의 제주도 촬영 중에 시나리오를 읽게 됐어요. 엔딩신에서 은모가 차를 타고 가는 장면을 읽는 데 마치 마음을 쥐어짜는 듯 무거운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한 장면에 은모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어요. 스케줄 상 출연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마침 드라마 촬영이 중단된 시기에 영화를 들어가게 됐죠. 마치 누군가 그렇게 시간을 조정해준 것처럼요."
'질투는 나의 힘' 이후 7년 만에 연출자로 돌아온 박찬옥 감독은 드라마 촬영에 지쳐서 쾡한 눈을 한 서우에게서 모든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은모의 심정을 느껴 캐스팅했다. 8년 동안이나 형부를 마음에 담고 지내지만 언니의 죽음에 깊은 연관을 지닌 것이 의심되는 형부 때문에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 은모는 표현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겪어 본 일이 아니기에 그 감정에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어요. 박찬옥 감독님의 스타일 또한 직접 세세히 가르쳐 주시기보다는 저 스스로 알아내기를 기다리시는 타입이었고요. 하지만 사람이 사랑을 할 때 꼭 한 가지 감정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은모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서 오해하고 빗나가고 그래서 불쌍하게 사는 아이에요. 그런 점을 이해하고 나니까 복잡다단한 은모의 감정들을 눈빛만으로 표현할 수 있더라고요."
영화 '파주'는 단순히 불륜 관계에 놓인 형부와 처제의 치정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파주라는 소도시가 파괴되고 새롭게 변모해가는 과정을 10여년의 세월에 거쳐 그 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통해 담담히 보여준다. 서우는 실제 철거를 앞둔 건물에서 철거민들과 철거 업자들의 대치신을 찍는 과정 중에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에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회색빛 안개 가득한 도시 파주를 배경으로 철거 직전의 건물들을 오가며 여인으로 변모해가는 한 소녀의 성장담을 표현해낸 서우는 영화 '파주'를 기점으로 성인 연기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 정신 연령이 18세인 소녀 역할을 많이 했어요. 저 자신도 많이 어린 편이어서 그런 역할이 편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 진짜 여자를 연기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감수성이나 본능에 의지해 연기했다면 이제 체계적인 연기 공부도 제대로 해보고 싶고요. 작년에 신인상 받았을 때 '평생 연기하며 이 은혜를 갚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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