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통상장관은 지난 수요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고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민감 분야 고려를 위해 2단계 협상, 개성공단 제품 포함, 서비스ㆍ투자 분야 'WTO 플러스'추진 등 그동안 양측이 합의한 협상 원칙을 발표했다.
그런데 중국과의 FTA 협상 개시 발표 형식과 내용을 보면 한미 FTA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격을 낮춘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7년간 각종 단계별 연구와 정부 간 논의를 해온 FTA 협상 개시 공식발표치고는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피해업종ㆍ중국 눈치보며 끌려가
한미 FTA 협상이 공식 선언되기 직전인 지난 2006년 초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개방 문제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라고 강조하면서 한미 FTA 추진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했다. 협상 중간에도 한미 FTA는 '먹고살기 위한 문제'라며 국민 설득에 힘썼고, 협상이 중대기로에 빠질 때면 측근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 협상단이 흔들리지 않고 미 측의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등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험난한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한미 FTA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은 우리나라 제1위 교역대상국이고 잠재성장 역량이 엄청나며 무역장벽이 높으면서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한 국가여서 높은 수준의 FTA 체결시 경제효과가 매우 크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국익 증진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중국과의 FTA 협상 개시를 발표하면서 피해 축소 방안만 강조할 뿐 FTA를 통해 우리가 얻어낼 경제이익을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데는 소홀했다. 반면,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은 "높은 수준의 FTA 추진" "2년 내 협상 타결 희망"의사를 피력해 우리 측 입장과 대비되는 느낌을 줬다.
지난 4ㆍ11 총선 이후 국내 정국이 어수선하고 연말 대선까지 예정돼 있어 농수산업 피해업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지만, 중국과의 FTA를 대하는 정부의 전반적인 구도가 중국의 요청에 마지못해 협상에 응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우리 협상단이 국내 정치적으로 힘을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동아시아 경제통합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응하기 위해 협상의 조기 타결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中 비관세장벽 해소 등 실리 챙겨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1단계 협상에서 민감 품목을 대폭 제외시킬 경우 다른 분야에서 경제적ㆍ전략적 이익을 챙기기 어려울 것이고, 협상 타결 시점에 역점을 두고 있는 중국은 알맹이 빠진 협정 타결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협정 체결은 우리나라 FTA 정책의 후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불필요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중국의 지역 경제 통합 주도권을 키워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FTA는 경제효과를 주된 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낮은 수준의 협정을 체결하면 소위 '스파게티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한중 FTA는 중국의 비관세장벽 해소와 투자자 보호, 투명성 강화, 협정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 마련 등 대중국 통상전략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농수산업 등 취약산업에 대한 대내적 보완대책을 충실하게 준비하고 이해관계자와의 대내협상도 강화해야 한다. 농정당국은 우리 국민들이 선호하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ㆍ유통체계 개선을 통해 농업인의 소득을 향상시킴으로써 중국 농산물 유입에 대한 우리 농업의 적응력을 높여가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