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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5월18일] 보마르셰

피가로. 18세기 말 이후 프랑스 최고의 캐릭터다. 보마르셰(Pierre Beaumarchais)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1775년)’ ‘피가로의 결혼(1781년)’의 주인공. 극중 피가로는 순발력과 재치 넘치는 언어로 귀족의 부패를 고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모차르트 각색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본 나폴레옹이 ‘혁명의 출발점’이라고 말했을 만큼 피가로는 사람들을 깨웠다. 프랑스 최고(最古)ㆍ최대 일간지 ‘르 피가로’지의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피가로를 그려낸 보마르셰는 시계공ㆍ발명가ㆍ음악선생ㆍ관리ㆍ첩보원ㆍ투기꾼ㆍ출판업자ㆍ망명객 등 다양한 궤적을 남긴 인물. 미국 독립에도 공헌했다. 시계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0세 무렵 시계 기어 제어장치를 발명해 루이 15세의 관심을 받게 된 후 공주들의 하프 교습까지 맡는 수완을 발휘한다. 궁정의 고급 정보를 활용, 부동산과 채권에 투자해 돈도 벌었다. 연상인 귀족 미망인과 결혼하고 돈으로 작위와 관직도 샀다. 루이 15세는 보마르셰의 작품에 화를 내면서도 첩보원으로 써먹었다. 임무는 영국의 군사시설 탐지와 프랑스 왕실 스캔들에 대한 출판 저지. 런던에 머물며 식민지의 반란을 돕는 게 프랑스의 최상책이라고 판단한 그는 대포 200문과 소총 6만정, 화약 20만파운드, 2만5,000명분 피복과 야영장비를 모아 40여척의 배로 미국에 보냈다. 국가보조금은 물론 개인 돈까지 털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 종반부는 배신과 궁핍으로 점철돼 있다. 소송 때문에 재산을 잃고 망명지를 떠돌았다. 지원물자를 농산물로 갚겠다던 미국도 약속을 어겼다. 1799년 5월18일 67세를 일기로 몰(歿). 미국은 1835년에서야 그의 딸에게 채무를 갚았다. 원금의 3분의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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