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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국제금융시장] 또 불거진 재정·정치혼란… '문제아 그리스' 세계경제 뇌관으로

조기 대선 승부수에 아테네지수 12.78% 폭락

유럽·亞 등 세계 증시 시총 1000억弗 사라져

디폴트 직면땐 제2 유럽 재정위기 재연 될수도



그리스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다시 등장했다. 그리스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재정 문제와 이와 관련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내년 세계 경제에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그리스 증시인 아테네 종합주가지수는 9일(현지시간) 전날 대비 12.78% 폭락한 902.84포인트로 마감했다. 지난 1987년 12월 이후 27년 만에 일간 기준 최대 낙폭이다.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증시도 일제히 2% 이상 하락해 이날 하루 동안 전 세계 주요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 이상 증발됐다. 10일 아시아 증시도 영향을 받으면서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2.25%, 한국 코스피지수는 1.29% 떨어졌다.

9일 중국 증시의 폭락, 유가 불안 등의 악재가 겹친 가운데 글로벌 투자가들의 불안감을 크게 높인 것은 8일 그리스 정부가 결정한 '조기 대선 실시' 이슈였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당초 내년 2월로 예정된 대선 1차 투표를 오는 17일 치르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내 그리스 문제에 대한 투자가들의 두려움을 다시 일깨웠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날 전했다.

당초 사마라스 총리는 오는 2016년 초까지로 예정된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올해 말 조기 졸업하고 이를 기반으로 내년 2월 대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연정을 유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내년도 그리스 예산안의 재정긴축 방안을 놓고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 대외채권단과의 협상이 난항에 빠지면서 연내 졸업이 물 건너간데다 재정 긴축 반대 및 채권단과의 재협상을 주문하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강한 저항에 직면하자 조기 대선 실시라는 강수를 꺼내 들었다.

그리스 대통령은 의회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문제는 현재 집권여당인 신민당 연합이 확보한 의석이 155석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전체 의석(300석) 가운데 1·2차 투표의 가결 요건(200석)은 물론 마지막 결선 투표 조건(180석)에서도 25석이 모자란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날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스타브로스 디마스 전 외무장관이 의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이에 실패하면 의회는 해산하고 이르면 내년 2월께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지지율은 신민당에 5%포인트 앞서 있다. 총선이 치러진다면 글로벌 투자가들에게는 '악몽'처럼 여겨지는 시리자로의 정권 교체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달 캐피털그룹의 한 애널리스트는 투자가들과의 비공개 미팅에서 "(시리자의 정책은) 공산주의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며 "그리스의 모든 것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시리자는 2,400억유로 상당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있는 트로이카 채권단의 긴축 프로그램에 반대하면서 집권할 경우 채무의 50%를 탕감 받도록 재협상을 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는 EU 등 채권단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으로 시리자가 집권하게 되면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또다시 직면할 개연성이 높다.

르네상스캐피털의 찰스 로버트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6주간 그리스는 글로벌 시장에 올해의 러시아·우크라이나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시리자의 집권은 유로존으로 하여금 (그리스의) 첫 유로존 퇴출이냐, 아니면 채무탕감이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시나리오의 전개가 2010~2011년 촉발된 유럽 재정위기의 복사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글로벌 투자가들로서는 더욱 끔찍한 악재다. 2010년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 이후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 재정취약국들로 위기가 전이됨에 따라 유럽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이날 그리스의 국채 10년 수익률이 하루에만 0.93%포인트 뛰며 8%를 돌파한 것을 필두로 포르투갈(0.099%포인트), 이탈리아(0.093%포인트), 아일랜드(0.010%포인트), 스페인(0.042%포인트) 등의 국채 수익률이 모두 상승한 것은 이번 사태가 '제2의 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투자가들의 우려감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위기 당시 취약한 재무구조로 '피그스(PIIGS)'라는 오명을 입었던 국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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