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된 후 국민들의 문화·여가 활동에는 분명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일어났다. 연간 1회 이상 문화예술 행사를 관람한 경험이 있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2003년 62.4%에서 2014년 71.3%로 늘어났다. 연간 오락·문화 활동에 지출하는 비용도 같은 기간 9만 9,522원에서 14만6,814원으로 50% 가까이 증가했다. 극장을 찾는 누적 관객 수는 2억명을 넘어섰으며 특히 K팝을 위시한 대중음악 장르를 즐기는 비율은 과거 대비 대폭 늘어났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전과 달리 여가와 문화생활을 제대로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낸 '2014 국민여가활동조사'를 통해 지난 1년간 국민들의 여가활동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TV 시청 등의 '휴식활동'의 비율이 62.2%인 것에 비해 문화예술 관람활동과 참여활동은 각각 1.2%, 0.6%만을 차지했다. 문화활동이 국민 여가활동의 2%도 넘지 못한 셈이다. 아울러 그 적은 비중의 문화활동도 대부분이 영화를 관람하거나 가요를 듣는 등의 대중문화 소비로 채워질 뿐이다. 국민의 연간 서적 구매비용은 2003년 2만6,346원에서 지난해 1만8,154원까지 줄어들었고 무용이나 클래식 공연 등 고급 문화의 관람 횟수는 연평균 0.1회도 채 되지 않는다.
◇여가 늘어나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문화의 벽=다양하고 의미 있는 문화예술 활동이 국민들의 여가활동으로 선택 받지 못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이때 부담스럽다는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우선 비용적인 측면. "연휴 때 가족들과 뮤지컬이라도 한번 보려고 생각했는데 푯값과 차비·식사비 등을 따져보니 최소 30만~40만원은 들겠더라. 만족스러운 관람이 될지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에 선뜻 티켓을 끊기가 쉽지 않았다"는 한 직장인이 말은 이런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시설 탓에 양질의 연극이나 뮤지컬 등을 쉽사리 접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화활동을 가로막는 벽이다. 실제 문체부가 펴낸 '2014 문화 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 관람시 보완해야 할 부분을 묻는 말에 '가까워야 한다'는 응답을 택한 이가 18.7%에 달했다. 문화행사 참여시 애로사항으로 '시간이 좀처럼 안 난다(19.1%)'는 응답도 일견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관계자들은 '경험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화활동을 하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라며 "오페라를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바쁜 시간을 쪼개 공연장을 찾게끔 하고 비싼 오페라 표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교육·경험, 저렴한 비용으로 관객에 먼저 다가서야=관객, 특히 잠재 미래 수요층인 아동·청소년에 대해 문화예술 교육을 확대하는 것은 앞날을 위해 중요한 일이다. 어린 시절 경험이 향후 문화관람 활동 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실제 2012년 조사에서는 유·아동기와 청소년기 문화예술 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 문화예술 행사 관람 횟수가 연간 약 8회로 경험이 없는 사람들(약 4회)의 2배에 달하기도 했다. 문체부는 2005년부터 아동·청소년들의 감수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전국 초중고교에 전문 예술강사 파견을 지원하고 있다. 국악·연극·영화 3개 분야로 시작했던 사업은 현재 무용·디자인·공예를 포함한 8개 분야까지 확대됐고 올해부터는 문학창작과 미디어아트, 서예·한국화 분야의 강사도 파견할 계획이다.
아무리 좋은 공연도 관객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문화생태계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문화 향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문화계가 여전히 소극적인 국민들의 문화 관람·참여 활동을 북돋기 위해 먼저 문턱을 낮춰야 한다.
한 달에 한번 공연 티켓 등을 대폭 할인하는 '문화가 있는 날'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올 1월 기준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똑같은 전시인데도 무료 입장이 가능한 '문화가 있는 날'의 관객이 전일 대비 1.5배 늘어났고 예술의전당 역시 1월 마지막 주 수요일 관객이 전날보다 87% 증가했다"며 "처음에는 비용 부담에 난색을 보인 기관도 많았지만 지금은 할인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예매하는 관객들에게만 해주는 식으로 고객정보를 얻는 기회로 삼는다거나 하는 등으로 기관도 관객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을 찾아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소한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을 제공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난해 11월부터 예술의전당이 실시하고 있는 '콘텐츠 영상화 사업'을 예로 들 수 있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발레단 등의 공연을 촬영해 극장에서 틀어주는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은 저렴한 가격 또는 무료로 양질의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돕는다. 어렵다고만 느끼는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꾸는 셈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