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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경제의 또 다른 활로

현오석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

러시아가 깨어나고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 페레스트로이카와 지난 91년 구소련의 붕괴로 시장경제 체제에 들어섰던 러시아가 정치ㆍ경제적인 혼란 속에 98년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자 서방언론들은 ‘동면에 들어간 북극곰(hibernating bear)'이란 표현을 써가며 러시아에 냉소를 보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고유가 지속과 중동지역 불안으로 인한 원유수출 급증,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정책으로 러시아는 99년 이후 연평균 6%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외환보유고는 9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본격적인 경제 성장에 돌입한 러시아는 ‘2010년까지 GDP를 2001년의 2배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러시아의 성장에 발맞추어 우리기업들은 오일달러 유입으로 호황을 맞고 있는 러시아 내수시장 공략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 러시아에서 200% 이상의 판매 증가율을 기록하며 외제차 판매 1위인 도요타를 위협하고 있다. 삼성의 휴대폰은 이미 고가품으로 자리 잡았고 모스크바 번화가에는 ‘LG 다리’로 불리는 다리가 있을 만큼 한국기업들의 선전이 눈부시다. 우리기업들의 분발에 힘입어 러시아와의 교역규모는 작년에 42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 1~7월 대(對)러시아 수출은 54%나 증가했다. 그러나 러시아 수입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말 현재 1.9%에 그치고 있다. 한국의 러시아 직접투자도 2억 달러 규모로 전체 해외투자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제조업 투자 비중은 26%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이러한 사실은 러시아경제 규모와 앞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감한 할 때 아쉬움을 남겨주는 대목이다. 우리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한 중국이 이제는 우리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성장한 만큼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 수출구조를 확보할 수 있는 대체시장이 필요하다. 주력 수출상품에서 경쟁관계가 심화되고 있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비교적 상호 보완적인 수출입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 어느 나라보다 한국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호의적이고 중산층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 독일 외에 뚜렷한 시장 선점국이 없다는 점은 지금이 바로 ‘기회’임을 보여준다. 러시아 개방 이후 진출 러시를 이루었던 우리기업들은 98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철수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금 러시아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진출 장벽으로 꼽히는 정보부족, 부실한 금융산업, 까다로운 통관은 신흥시장이라면 어느 곳이든 안고 있는 문제다. 오히려 WTO 가입을 앞두고 제도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금, 한발 앞서 진출을 꾀하는 것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길이 될 것이다. 러시아를 말할 때 풍부한 자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자국에 유리하게 러시아 통과 송유관을 건설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과 LNG 플랜트 건설 등 에너지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꾀하고 있다. 에너지부문은 러시아 정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므로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산ㆍ관ㆍ학 협력을 강화해 러시아와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 체제를 도출해 내야 할 것이다. 한편,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한국의 기술협력은 항공ㆍ우주 및 기초과학 분야에서 3~4년 전부터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반도체, 가전제품 등 우리의 핵심 수출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이 시작된 만큼 지속적인 기술개발이 필수적이다. 러시아의 첨단 핵심기술 및 원천기술과 국내 상용화 기술을 접목해 국내 주력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신산업 창출을 이룰 수 있다. 국내 기업이 러시아의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에어컨이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은 좋은 사례이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단체장, 재계 총수들을 이끌고 오는 9월20~23일 러시아를 방문한다. 러시아와의 에너지협력, 교역확대, 우주과학기술 협력 등이 핵심 아젠다로 다루어 질 예정이다.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한차례 연기되는 진통을 겪으며 어렵게 성사된 공식 방문인 만큼 경제부문에 있어 확실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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