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오후 나른한 졸음을 흔드는 버럭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옆자리의 유 기자, 어찌나 목청이 좋은지 깜짝 놀랐다. "왜~?" 애써 졸음을 털어내고 물었더니 "대형 기획물을 하나 만들어볼까 하는데요"란다. 솔직히 마뜩잖았다. 한 달가량의 긴 시간에 4~5명이나 일상 업무에서 빠지겠다는데 어찌 흔쾌할 수 있겠나. 그래도 짐짓 웃으며 "그래? 팍팍 밀어줄게. 한 번 해봐"라고 내뱉고 말았다.
서울경제신문의 디지털미디어 브랜드인 '서울경제 썸'이 만든 인터랙티브형 콘텐츠 '신문 그리고 폐지 줍는 노인'은 그렇게 시작됐다. 제작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그 어떤 외부 도움 없이 '100% 자력 해결'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욱 컸다. 4분짜리 폐지 줍는 영상을 담기 위해 3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8시간씩이나 취재진이 땀 흘려 손수레를 끌어야 했을 정도였다. 기획부터 섭외·현장취재·편집까지 모두 우리 힘으로 해야 내공을 쌓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그랬던 것인데 제작진의 고통을 지켜보자니 후회막급이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폐지 노인'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종합 편인 '그 많던 신문 줍던 노인은 어디로 갔을까'는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을 뜨겁게 달궜다. 3개의 동영상과 7개의 인포그래픽에 텍스트가 결합된 콘텐츠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네티즌의 마음을 움직였던 모양이다. 이쯤 되자 '폐지 노인'을 신문에 실어볼까 하는 욕심이 꿈틀거렸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24년을 소위 '신문쟁이'로 살아온 사람인데. 하지만 욕심을 꾹 눌렀다. 왜냐고? 서경썸은 지금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로 가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모바일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통계를 보더라도 전 세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 20억3,000만명 중 모바일 사용자가 15억6,000만명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10~20대의 매체 이용 패턴을 보면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이 70%로 TV의 14%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오는 2016년이면 전 세계 모바일 기기의 수가 100억대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이제 모바일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오죽하면 2013년 혁신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를 선언했던 뉴욕타임스(NYT)가 채 1년도 안돼 '모바일 퍼스트'로 방향을 틀었겠나.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저스에 인수된 워싱턴포스트(WP)도 모바일 혁신을 거듭한 끝에 페이지뷰를 1년여 만에 100% 이상 늘렸다. 여기에다 이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 로렌 파월 잡스,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 크리스 휴스 등까지 앞다퉈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면서 모바일 퍼스트 흐름은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모바일 세계란 얼마나 편한가. 가만히 앉아서도 지인이 보내주는 뉴스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고 '좋아요' 클릭 수로 상대의 관심까지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스마트폰 중독자가 속출하는 것은 둘째치고 '좋아요'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엽기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따봉충(蟲)'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렇듯 타아에 도취돼 현실감각과 자아마저 상실해가는 모바일 세계라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서경썸이 바라는 모바일 혁신은 타아도취 속 자아상실이 아니라 건강한 소통과 공감 속에서 개개인이 상처를 위로받고 사회의 긍정성이 증진되는 행복한 변화다. 이번에 제작한 인터랙티브 콘텐츠 '폐지 노인'에는 그런 바람이 담겼다. 끝으로 '폐지 노인' 콘텐츠에 달린 댓글을 소개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psy9****)."
/문성진 디지털미디어부장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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