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지윤(45)씨의 딸 선희(16)양은 며칠 전 집에 친구를 데리고 왔다. 지윤씨는 딸 아이의 친구를 반갑게 맞으며 함께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쉴 새 없이 계속됐고, 지윤씨는 오랜만에 젊어지는 듯한 기분까지 받았다.
그러나 지윤씨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윤씨는 점차 아이들의 대화에서 소외됐다. “너 걔랑 썸타냐? (관심 가는 이성과 잘돼가니?)”, “고나리(관리)나 잘 하라 그래”, “에바(오버의 변형) 떠는 거야.”, “프사(프로필사진) 바꿔”.
바로 아이들의 대화에서 이런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윤씨는 아이들과의 대화를 위해 따로 신조어 공부라도 해야 되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2. 김미선(47)씨는 중학교 선생님이다. 며칠 전 그녀가 맡고 있는 반의 친구들 두 명이 크게 싸웠다. 결국 이들은 교무실까지 불려오게 됐다. 미선씨는 싸움을 한 친구에게 “왜 싸웠니?”하고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쟤가 계속 폰 빌려달라고 ‘어그로 끌어서’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어그로 끌다?’ 이 단어는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다. 알고 보니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을 괜스레 약 올리거나 신경을 건드리며 성가시게 하는 행위’를 말하는 신조어였다. 미선씨는 “요즘 애들은 뜻도 해석이 안 되는 이상한 말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최근 이처럼 기성세대들을 당황하게 하는 신조어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고 있다. 하도 많은 신조어가 생겨나다 보니 인터넷에는 신조어 사전까지 등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따로 신조어를 공부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신조어테스트도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신조어 실력을 확인하고 테스트 할 수 있다.
신조어 중 일부는 한국어 대사전에까지 오르게 됐다. 최근 국립국어원은 10월 정식 공개하는 위키피디아 형식의 온라인 한국어 지식대사전인 ‘우리말 샘’에 트통령 등의 신조어를 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 신조어는 이제 사실상 공식 언어가 되는 셈이다.
요즘 특히나 더 많은 신조어가 탄생하는 배경에는 스마트폰의 일반화와 SNS의 등장이 있다. 주로 글을 짧게 쓰게 만드는 스마트폰이나 SNS의 특성이 청소년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에서 긴 글을 잘 읽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톡 같은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긴 글을 읽고 쓰는데 피로감을 많이 느낀다.
이제 이들은 말하기에 길다 싶으면 짧게 줄이거나 변형한다. 버카충(버스 카드 충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 행쇼(행복하십쇼) 등이 그 예다.
온라인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조어들은 세대단절이라는 극단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실제로 위 사례의 미선씨와 지윤씨같이 청소년들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조어로 인한 한글파괴 현상 역시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렇지만 신조어의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신조어는 신세대들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다. 신조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은 서로 친밀감과 즐거움까지 느낀다. 신조어는 빠른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명심해야 한다. 넘치면 아니 하니 만 못한 것이다. 적당한 신조어의 사용을 통해, 신조어가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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