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린이 하트 모양이네."
경기 포천의 베어크리크GC를 처음 찾는 골퍼들은 눈을 의심하게 된다. 이 골프장의 명물인 크리크 코스 15번홀(파3) 그린의 독특한 모양 때문이다.
14번홀 그늘집에서 나오면 연못 속에 섬처럼 떠 있는 이 하트 그린이 눈에 들어온다. 티잉그라운드와 그린 사이의 고저 차가 21m나 나는 내리막 홀이기 때문에 그린의 형태가 또렷하게 보인다. 오른쪽에는 일반적인 그린이 하나 더 있다.
이 그린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여기 얽힌 스토리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2003년 개장 때부터 이 골프장을 즐겨 찾던 한 노신사가 있었다. 일찍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자녀를 키우며 살아온 그는 한 골프 모임에서 동년배의 여성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지만 노신사는 황혼의 로맨스에 대한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아들 내외와 동반 라운드를 통해 이 여성을 소개했다. 역사는 크리크 코스 15번홀에서 이뤄졌다. 여성은 노신사가 권한 8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날렸고 볼은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행운의 홀인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했고 아들 내외의 마음까지 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자녀와 지인들의 축복 속에 결혼에 골인한 노신사는 2009년 크리크 코스를 리모델링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양잔디로 바꾸고 홀마다 2개씩 있던 그린을 하나로 만드는 대대적인 공사였다. 노신사는 사연을 설명하고 15번홀 왼쪽 그린을 없애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골프장 측은 왼쪽 그린을 하트 형상으로 고쳤고 이렇게 해서 이 홀만 그린이 2개 그대로 유지됐다.
이 러브 스토리에 허구적인 요소도 첨가됐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두 마음을 연결해준 그린과 골프의 미덕 아닐까. 하트 그린은 라운드의 즐거움을 보태주는 양념이다.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죽은 존재가 살아 숨쉬는 존재로 재탄생된다는 평범한 이치를 되새길 수도 있다.
이 홀은 레귤러 티잉그라운드 기준으로 134m지만 내리막이라 실제 거리는 110~120m 정도를 보고 클럽을 선택해야 한다. 하트 그린은 예쁘지만 삼면이 워터해저드로 둘러싸여 있어 공략이 쉽지는 않다. 부드러운 스윙으로 방향에 주의하며 티샷을 하는 게 낭만과 파 세이브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열쇠다.
베어크리크GC는 36홀 골프장이다. 양잔디가 깔린 크리크 코스 18홀이 다양한 경관을 갖춰 여성적이라면 들잔디인 베어 코스 18홀은 시원하게 뻗은 남성적 코스다. 크리크 코스는 잘 관리된 잔디와 억새밭의 조화가 뛰어나게 좋다. 코스와 시설ㆍ서비스가 명문 회원제 부럽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홀 곳곳에서 운악산 주봉인 망경대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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