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A증권사에서 파생상품거래를 담당하는 김 모 팀장은 오전 8시 50분께 0.80원의 가격에 1만5,000계약을 매수한다는 주문을 입력했다. 하지만 입력 과정에서 실수로 소수점을 찍지 않아 당초 매수하려던 가격의 100배인 80원으로 주문을 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같은 날 1.1원에 300계약 매도주문을 냈던 B증권사 박 모 팀장은 오전 9시 개장과 동시에 예상 밖의 가격인 80원에 계약이 체결되자 상대방 주문이 비정상적임을 직감했다. 박 팀장은 즉시 매도가격을 80원으로 올려 추가 주문을 냈고 결국 1만계약을 80원에 매도했다. 이로 인해 A증권사는 70억원 가량의 손해를 입게 되었다. A증권사는 손해를 회복할 수 있을까.
A 최근 파생상품 거래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뤄지다 보니 단순 실수가 회사 존망과 직결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 사례는 파생상품 거래에서 가격 등에 착오가 있는 경우 거래를 취소하고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게 된다.
먼저 시가 0.8원 가량인 선물 계약을 이보다 100배 높은 80원에 매도한 거래가 민법 제104조에서 규정하는 당사자의 경솔로 인해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거래로서 무효인지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김 팀장의 경우 선물 계약을 0.8원에 매수하기로 신중하게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였지만 그 의사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80원으로 잘못 입력한 것이므로 의사결정 자체는 신중하게 한 사안이므로 민법 104조가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으로는 계약에 대한 의사표시에 착오가 있으면 거래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민법 제109조를 적용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된다. 해당 거래가 한국거래소에서 행해진 정형화, 표준화된 거래로서 거래가 짧은 시간에 대규모로 이뤄지고 증권사들 사이에 이뤄진 거래이므로 민법 제109조에 따른 착오거래 취소가 위와 같은 파생상품 거래에 적용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에 대해 대법원(2013다49794 판결)은 민법 제109조의 법리는 별도의 규정이나 당사자의 합의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모든 사법상의 의사표시에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증권이나 파생상품 거래에서 거래 안전과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하더라도 한국거래소의 업무규정에 민법 제109조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제한하고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를 적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민법 제109조는 한국거래소를 통한 금융투자상품 거래에도 적용되므로 A증권사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해당 파생상품거래를 취소할 수 있다. 비록 김 팀장의 실수가 중대한 과실이라 하더라도 위 사례는 B증권사 박 팀장이 A증권사 김 팀장의 실수를 이용해 이익을 얻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해당 계약을 취소해 손해금의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
정유철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youchull@gmail.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