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은 제도 도입 10개월 만에 대출 규모가 25조원에 달하고 승인 건수도 4만건에 육박할 만큼 급성장했다. 무담보신용대출 비중은 26.3%로 일반기업의 두 배가 넘고 금리도 기존 대출보다 0.45%포인트 낮다. 이자 부담이 적은데다 담보 걱정도 없으니 벤처나 중소기업에는 오아시스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 만큼 평가도 제대로 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은행들이 기술과는 거리가 한참 먼 예식장, 숙박업소, 부동산임대 업체 등에 돈을 빌려주거나 기존 대출을 기술신용대출로 이름만 바꾼 경우도 있다는데 어찌 후한 점수를 주겠는가. 15년 전의 벤처붐 때처럼 '눈먼 돈' 취급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 모든 게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만 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평가의 신뢰성을 높이면 된다.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는 금융기관이나 정부가 아니라 바로 벤처캐피털이다. 이들은 기술과 성장성만 보고 투자하는 만큼 냉철한 눈을 가질 수밖에 없고 수십년간 벤처기업들과 함께했으니 누구보다 시장을 잘 알고 있다. 기업 또는 기술 평가에서 이들 만한 달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금융이 '좀비기업 양산소'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벤처캐피털의 평가 시스템 참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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