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BNP파리바 제재로 자국 금융권력의 힘을 전세계에 과시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 금융 시스템과 달러화 위상을 약화시킬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현지시간) "미 당국은 BNP파리바 제재로 글로벌 은행을 규제할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미 금융 시스템이 쇠퇴하는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는 수단·이란 등에 대한 미국의 제재조치를 위반한 혐의로 미 법무부와 사상 최대인 89억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합의했다.
현재 미국 정부는 러시아·시리아·이란·북한 등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국가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주저하는 대신 경제제재를 주요 압박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각국 주요 은행 대부분이 달러 거래를 위해 미국에 법인을 두고 있어 금융제재로 적대국의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FT는 "중국은 국제무역이나 투자 분야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고 러시아는 달러화 대신 다른 통화의 사용을 늘리고 있다"며 "미국이 금융제재를 남발할수록 미 달러화 역할에 대한 다른 나라의 반발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천문학적 벌금 폭탄을 맞은 유럽에서 경고장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미 법무부 등은 크레디아그리콜·소시에테제네랄 등 프랑스 주요 은행 2곳과 독일 도이체방크 등도 돈세탁과 경제제재 위반 등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크리스티앙 누아예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BNP파리바 제재는 프랑스는 물론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국제거래에서 달러 외 다른 통화의 사용을 촉진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는 미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전직 미 재무부 관료인 자카리 골드먼은 "미국의 제재는 BNP파리바에서도 보듯 미국인이 연루되지 않은 거래도 규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면서도 "미 정부는 제재의 잠재적 비용도 막대하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 정부와 주류 언론들은 유럽 등의 경고를 실속 없는 엄포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BNP파리바의 사례는 미국 금융권력이 다른 나라를 손아귀에 넣고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아시아권에서 사용되고 있는 중국 위안화가 달러화를 위협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일축했다. 닐 월린 전 미 재무부 차관도 "미 달러화는 거래가 이뤄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대체 불가능하고 피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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