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서방국들의 제재와 국제유가 폭락이 겹쳐지면서 러시아 경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28일(현지시간) 국제 외환시장에서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전일 대비 2.30% 낮은 49.965루블을 기록하며 사상 최저 수준으로 평가절하(환율상승) 됐다. 하루 전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감산 협의가 불발된 여파다. 러시아는 지난 29일 원유생산량을 줄이지 않겠다는 OPEC 합의를 수용해 자국도 감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혼자만 원유생산을 줄여봐야 국가 수입만 줄어들 뿐 추락하는 국제유가를 받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신 러시아 정부는 유럽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제재를 철회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이날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알렉세이 메슈코프 외무차관은 "유럽은 의미 없는 제재를 철회하고 블랙리스트를 해제해야 한다"면서 "유럽연합(EU)이 제재를 중단하면 러시아도 유럽 농산물 수입 제한조치를 풀겠다"고 말했다.
유가급락은 가뜩이나 심화되는 서방의 러시아 경제제재와 겹치면서 러시아에 한 해 1,40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끼치고 있다는 게 러시아 정부의 주장이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최근 외신을 통해 "우리(러시아)는 지정학적 경제제재로 한해 약 400억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으며 기름값이 30% 하락한 것을 기준으로 할 경우 연간 900억달러에서 1,000억달러의 경제손실을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시장에서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지불유예)를 선언했던 1998년의 위기를 되풀이할 지 주목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의 석유 및 천연가스 판매가 수지균형을 이루려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는 돼야 한다면서 이미 러시아가 유가 충격으로 경기후퇴의 벼랑 끝에 섰다고 전했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위기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달러화 대비 루블화 가치가 올해 들어 50.6%나 폭락(32.8850루블→49.9650루블)하면서 모스크바 등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는 달러화 등으로의 환승을 유혹하는 금융사들의 입간판들이 줄줄이 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 현지 기업과 가계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은행 등에서 자국 통화로 예치했던 예금을 인출해 외화 예금으로 갈아타는 이른바 뱅크런(예금인출 사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루블화를 방어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FXTM의 시장담당 선임 애널리스트인 자밀 아매드는 마켓워치를 통해 유가의 추가하락과 서방의 경제제제가 복합된 러시아 경제의 현황을 환기하면서 "(러시아 중앙은행이) 루블화 가치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최근 에너지 협력 등을 강화하겠다고 손을 내미는 중국이지만 중국 역시 근래에 경제 경착륙을 우려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도움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으리라고 외신들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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