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국이 총선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정당도 안정적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요 정당들은 재선거를 피하기 위해 연정구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정에 대한 각 정당의 구상이 엇갈려 오는 3월 하순까지도 정부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6월로 예상되는 재선거 이전까지 정국공백과 리더십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또다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제1당인 민주당은 총선 하루 만인 26일(현지시간) 자신들이 주도하는 소수정부 구성에 나섰다.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 민주당 당수는 이날 "정부를 구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이 전했다. 민주당의 중도좌파연대가 하원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상원에서 최다 득표를 한 만큼 정부구성의 방향을 결정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소수정부의 한계를 피하고 안정적 정부를 구성하려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자유국민당 또는 베페 그릴로의 오성운동 중 한 정당과의 연정이 불가피하다. 베르사니는 일단 제2당인 자유국민당과 손을 잡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오성운동에 손을 내민 상태다. 베르사니는 오성운동에 "기존 정치질서를 청소하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시간"이라며 정부구성을 위한 잠정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릴로는 "(우리를 지지한) 대중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정 제안을 거절했다. 자유국민당도 민주당의 소수정부에 냉담한 입장이다. 다만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마리오 몬티와는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으나 다른 정당과는 어디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겠다"며 민주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게다가 안정적인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민주당이 자유국민당, 몬티 총리의 중도연합 등 '중도' 성향을 공유하는 정파가 참여하는 대연정을 꾸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정국이 안정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주요 정당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베르사니가 대연정을 끌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연정을 제안한 베르사니와 베를루스코니가 공유하는 유일한 정서는 '재선거는 피하자'는 것이다. FT는 재선거가 치러질 경우 명실상부한 오성운동의 승리로 끝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양대 정당 모두 재선거를 원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지오반니 오르시나 로마 루이스대 교수는 "똑같은 후보가 지금 그대로 선거에 나선다면 그릴로가 대승할 위험이 있다"고 전망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정부가 꼭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연정에 대한 양대 정당의 구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재선거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적어도 다음달까지는 이탈리아 정부가 구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가운데 그릴로는 재선거가 실시되기 전까지 앞으로 4개월간 정부가 구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민주당 주도로 소수내각을 꾸린들 1년 이상 이어질지조차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이 때문에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이 3월 중순께 실시되는 대선 이후 과도내각을 꾸려 재선거를 위한 새 선거법을 만들 가능성도 여전히 주목된다. 이탈리아에서는 상하원과 지역대표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임기는 5월15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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