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이 편찬한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에는 "티가 있는 구슬(瑕玉)을 그대로 두면 온전할 것인데, 구슬의 티를 제거하기 위해 서투른 솜씨로 나섰다가는 오히려 망가뜨려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만들고 만다"는 말이 나온다.
요즘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이를 연상하게 하는 걱정을 자주 듣게 된다. 그 중에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대기업 관련 정책이 한국 경제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강한 주장도 있다.
실제로 최근 정치권은 대기업 규제조치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규제, 재벌세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대기업으로서는 불만이 크겠지만 대기업의 책임도 있다. 그동안 대기업이 만든 일자리나 나눔 실천은 사회가 만족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 또한 최근 들어 삼성그룹과 LG그룹이 담합근절을 다짐하고 중소기업과의 공존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찾는가 하면 대기업 오너들도 사재를 털어 사회적 공익에 기여하는데 힘쓰고 있지만 아직은 이 정도를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라고 받아들일 만큼 우리 사회가 너그럽지는 못하다.
불순한 동기 지닌 '대기업 때리기'
사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는 양자 간의 오랜 악연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선거에 불리하다 싶으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사회의 온갖 병폐를 대기업 책임으로 돌리며 표 몰이에 나서고는 했다. 그러다가 선거가 끝나면 대기업이 최고 애국자인지 이제야 알았다는 둥, 대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둥 정치권은 표변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는 부당하다. 정치권의 동기도 불순할 뿐 아니라, 그 후과가 재앙 수준이라 할 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권이 대기업 때리기를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기 자체가 불순하다. 정치권은 양극화의 심화를 대기업 때리기의 명분으로 삼지만 이는 논리적 비약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이토록 심해진 데는 정부의 정책 실패, 정치권의 무능도 한몫 했다.
정치권이 대기업을 때릴 자격이 있는지조차도 의문이다. 새누리당은 돈 봉투 사건으로 부패의 온상임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민주통합당도 총선을 앞두고 명망가들이 낙하산공천 잔치를 벌이고 있다.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만 탓하는 새누리당이나 구태정치를 일삼는 주제에 깨끗한척 오만을 떠는 민주당이나 국민 눈에는 한심한 존재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 때리기가 우리 경제에 미칠 치명적 폐해다. 출총제부활과 순환출자규제, 재벌세 등 정치권 대기업 때리기 주장은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하는 우리 기업들의 활력을 크게 위축시키고 이것은 다시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업활동 위축에 따른 경기부진은 결국 양극화를 더 키울 수도 있다.
사실 선거 때마다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은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와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 국가, 그리고 1950~1960년대에는 한국을 원조했던 필리핀 등도 과거에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때 세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잘사는 나라였던 이 국가들은 오랫동안 선거 때마다 선심성 정책을 남발한 결과, 지금은 국고가 마르고 기업활동이 위축돼 지금은 후진국이 됐거나 경제가 파탄 났다.
표 겨냥한 선심정책은 시대착오
이처럼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는 국가와 경제를 멍들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역사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는 시대착오적이다. 선심성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뼈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해외 국가들은 국익을 위해 법인세를 내려주는 등 대기업의 기를 살리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더욱이 우리 국민은 이젠 정치권의 선심정책에 지긋지긋할 지경이다. 경제가 매우 어려운 지금 대기업 때리기는 결코 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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