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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지난 2001년. 골드만삭스의 짐 오닐 회장은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국가들을 뜻하는 신조어인 '브릭스(BRICs)'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후 브릭스 국가들은 오닐 회장의 예언대로 눈부신 성장을 구가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로 선진국들이 크게 흔들릴 때도 독자적인 성장모델을 앞세워 빠르게 위기를 극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브릭스 국가들이 이른 시일 내 선진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경기부양책의 약발도 듣지 않으면서 브릭스 성장모델 역시 한계에 부딪힌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오닐 회장마저 올해 들어 "브릭스가 늙어간다" "걱정스럽다" 등과 같은 발언을 쏟아내며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실제 최근 브릭스 국가들의 성장률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인도의 경우 2010년 성장률이 8%대로 정점을 찍었으나 지난해에는 5%대로 추락했으며 올 2∙4분기에는 5.5%에 그쳤다. 인도중앙은행(RBI)은 지난달 성장률 전망치를 7%에서 6.5%로 하향 조정했다. 브라질은 더 심각하다. 2010년 7.5%로 정점을 기록한 후 지난해 2.7%로 추락했으며 올해도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자원 의존비중이 높은 러시아 경제도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 2∙4분기 전년 대비 4% 증가하는 데 그쳐 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물론 이들 브릭스 국가들의 성장과정은 차이점이 너무 커 하나의 모델로 묶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이 수출∙투자 중심의 국가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했고 브라질∙러시아의 경우 정부가 원자재 수출에 기반해 성장을 이끈 반면 인도는 민간∙내수 비중이 훨씬 더 크다. 하지만 이들이 고성장 과정에서 잠재 불안요소를 외면한 게 글로벌 경기침체와 맞물려 위기를 불러왔다는 게 중론이다.
인도의 경우 가뜩이나 대외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외국기업에 대한 일관성 없는 규제정책을 발표해 투자가들의 이탈을 부추기는 등 고질적인 문제인 '정치 리스크'가 발목을 잡고 있다.
브라질과 러시아는 자원 의존형 경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오닐 회장이 브릭스 지위마저 불안하다고 지적한 브라질의 경우 지난 10년간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룰라 모델'에 대한 믿음마저 흔들리고 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 금리 인하 등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이전보다 훨씬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브릭스가 선진국에 올라서려면 그동안 의존했던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모델의 질적 전환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악의 경우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래정 L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에 대해 "브릭스 경제의 규모가 커져 과거처럼 눈부신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경기침체기를 벗어날 경우 장기적으로 과거의 높은 성장률과 현재의 저조한 성장률의 중간 정도에서 수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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