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직면한 중국이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한국, 일본, 미얀마 등 주변국과도 외교 마찰과 갈등을 빚으면서 고립무원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내에서는 미국, 일본 등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피포위 심리(Siege mentality)'까지 나타나면서 반외세 감정도 고조되고 있는 상태다. 특히 내주로 잡혀있던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미얀마 국빈 방문이 14일 돌연 취소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통적인 우방국 사이이던 양국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 파키스탄과 함께 중국의 3대 맹방으로 불리던 미얀마는 자국 민주화 진전과 맞물려 지난 1955년 이후 처음으로 미 국무장관(힐러리 클린턴)의 방문을 받는 등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 시도에 나서고 있다. 국제사회 복귀를 꿈꾸는 미얀마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유엔의 해외 자산 동결 등의 제재 조치 해제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원 총리가 미얀마를 방문해 인도양에서 시작돼 미얀마를 관통하는 송유관 및 가스관을 건설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양국관계 변화에 따라 자칫 사업이 백지화할 경우 미얀마를 통한 중국 서남부로의 원유 수송이 원천 차단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 지난 9월 미얀마는 자국 내에서 중국이 추진하던 이라와디강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포기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 소재 중국 정법대학의 문일현 객좌 교수는 "중국의 항공모함 진수 등 군사력 팽창을 우려하는 주변 아시아국의 입장과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의 아시아 개입 전략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중국이 고립돼 가는 모양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또 14일 일본과 영토갈등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 순찰에 3000톤급 대형 순찰함을 투입해 일본과의 긴장 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사히 신문은 오는 26일 중ㆍ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춘샤오 분쟁지역의 가스전 공동개발을 위한 조약 체결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중국이 순찰함을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내주 예정됐던 원 총리의 네팔 국빈방문을 중국이 취소하자 네팔 현지 언론은 '외교적 대실패'라는 제목으로 중국을 비난했다. 또 중국 불법어선 단속중 한국 해경이 살해된데 이어 주중 한국대사관에 쇠구슬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 정부는 자칫 한중간 전면적인 외교 갈등으로 증폭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오는 20일부터 사흘간 베트남을 방문해 영유권 분쟁중인 남중국해 이슈를 논의할 것으로 보이지만 양국의 입장차가 커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아세안지역포럼에서 남중국해가 자국의 핵심이해 지역이라고 선포한 이후 베트남, 필리핀 등 분쟁 당사국인 동남아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미ㆍ중이 대립각을 형성하는 가운데 주변 아시아국들은 군사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협력을 취하는 이중 외교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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