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쓸이는 좌절됐지만 위대한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5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2ㆍ6,672야드)에서 끝난 브리티시 여자오픈(우승상금 약 4억5,000만원)은 세계랭킹 2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남녀프로골프 사상 첫 메이저대회 4연승이라는 박인비(25ㆍKB금융그룹)의 도전이 아쉽게 실패로 끝난 것이다. 세계 1위 박인비는 4라운드에서 버디 2개에 보기 6개, 더블보기 1개로 6타를 잃어 최종합계 6오버파 공동 42위로 대회를 마쳤다. 최나연(26ㆍSK텔레콤)과 박희영(26ㆍ하나금융그룹)이 대신 우승경쟁에 나섰지만 6언더파에서 멈춰 섰다. 루이스에 2타 뒤진 공동 준우승. 올 시즌 한국인 메이저 연승 행진도 '3'에서 마감한 것이다.
하지만 박인비를 필두로 한 '코리안 시스터스'의 도전은 9월12일 프랑스에서 개막하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계속된다. 올 시즌부터 메이저로 격상된 에비앙은 지난 2010년 신지애(25ㆍ미래에셋), 지난해 박인비가 우승했던 바로 그 대회다.
◇루이스 "박인비도 사람이더라"=컴퓨터 퍼트로 유명한 박인비였지만 50~60야드 거리의 퍼트도 종종 나올 만큼 넓은 '운동장 그린'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퍼트 거리가 계산을 불허할 정도로 길고 그린 스피드는 느리다 보니 자로 잰듯한 거리감도 통하지 않았다. 항아리 벙커와 질긴 러프가 경계 대상이었지만 실제로는 넓은 그린이 최대 난적이었던 셈이다. 라운드당 퍼트 수 35.75개에 4라운드 퍼트 수는 무려 40개. 박인비는 "그린 스피드를 읽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에비앙 챔피언십을 전망하면서는 "이번 경험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해 다시 한번 우승 기대를 높였다.
한편 '2인자' 설움을 딛고 아시아인의 메이저 10연승을 저지한 스테이시 루이스는 박인비의 메이저 4연승 좌절에 대한 질문에 "박인비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루이스는 "메이저 3연승도 다시 나오기 힘든 엄청난 기록"이라고 덧붙였다.
◇5개 대회에서 4승도 그랜드슬램?=AP통신은 5일 "박인비의 그랜드 슬램은 끝나고 말았다"고 보도했다. 그랜드 슬램 중에서도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그해 메이저 전승으로 정의한 것이다. 루이스도 "5개 대회에서 전부 우승해야 그랜드 슬램"이라는 의견을 지난달 밝혔다. 공교롭게도 그랬던 루이스가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제패한 것이다. 반면 미국 골프채널은 "사상 최초 단일시즌 메이저 4연승이 좌절된 것"이라고만 보도했다. 그랜드 슬램 달성 기회는 남아있다고 본 것이다.
박인비가 에비앙에서 우승할 경우 어떤 매체는 '한 시즌 메이저 4승', 또 어떤 매체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고 보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사상 최초라는 사실. 보비 존스(미국)가 1930년 남자 US 오픈과 브리티시 오픈, US 아마추어, 브리티시 아마추어를 싹쓸이한 적이 있지만 마스터스가 포함되기 이전의 일이라 캘린더 그랜드 슬램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 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커미셔너는 지난달 "박인비가 메이저 4승을 하면 그랜드 슬래머로 부를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흥행이 최우선인 그로서는 당연한 발언이지만 어찌됐든 LPGA 투어 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박인비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 기회가 한번 더 남았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 이유다.
◇감 잡은 최나연과 물오른 박희영=박인비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 가능성이 유효하다면 한국인이 한 시즌에 4개 메이저를 휩쓰는 '코리안 슬램' 기회도 남아 있다는 얘기다.
올 시즌 LPGA 투어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韓流)는 18개 대회에서 절반인 9승을 쓸어 담았다. 이번 대회에서는 지난해 US 여자오픈 우승자 최나연이 화려하게 돌아왔다. 13번(파4), 14번홀(파5) 연속 보기 전까지 3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4라운드 그린 적중률은 94.4%(17/18). 올 시즌 우승 없이 여섯 차례 톱10에 입상한 최나연은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우승보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무대로 삼는다는 생각이었고 어느 정도 달성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남은 시즌 최대의 성과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최나연과 공동 2위에 오른 박희영도 지난달 매뉴라이프 클래식 우승을 계기로 물이 오른 모습이다. 그는 US 여자오픈 컷오프 뒤 3개 대회에서 우승-공동 19위-공동 2위의 성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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