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지 않으면 패(敗)'하는 선거의 언어는 자극적이다. 3초 안에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어를 내놓아야 하는 탓에 지극히 단순하고 공격적이다. 언어가 복잡하면 패하는 것은 수순이다.
선거에서 주로 사용된 것 중 하나가 '언어 프레임'이다. 프레임을 짠 뒤 상대방을 그 안에 가둬두기도 한다. 프레임에 한번 갇히면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프레임에 의해 거부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다. 평범하면서도 순간적인 재치가 묻어나는 몇 마디의 말이 선거판을 뒤흔들기도 했다. 간단명료하지만 힘이 있는 언어구사는 지지층의 마음을 후련하게 했고 결집시켰다. 달변이 아니어서 더 매력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차라리 더 진솔하다는 이유에서다.
승리의 습관 때문일까. 박 대통령의 언어구사 방식은 선거 이후에도 변화가 없다. 국민들은 역시 후련함을 느끼지만 때로는 대통령의 언어 프레임에 갇혀 버리는 이들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게 '관피아(관료+마피아)'다. 마피아는 19세기의 시칠리아섬을 주름잡던 반정부 비밀결사 조직으로 시작해 매음·도박·마약·사금융 등을 운영할 정도로 기업화된 이탈리아의 범죄집단이다. 교황까지도 마피아에게 성전(聖戰)을 선언했다. 그런 마피아가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관료들과 동급이 돼 버렸다. 대통령이 '관피아'라는 말을 사용하는 순간, 모든 공직자들은 범죄집단으로 추락했다. 지나친 단순화의 덫에 걸려 버린 셈이다.
범죄자로 낙인 찍힌 뒤 공직자들이 겪는 방황의 골은 깊었다.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 공직자는 스스로 명예퇴직의 길을 택했다. "20여년 공직생활 중 올해처럼 정신적으로 힘이 든 적이 없다" "신분을 밝히는 것도 꺼려지고 자식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의식하게 된다" 등의 말도 듣는다. 젊은 사무관들은 "공직사회 선택을 후회한다. 더 늦기 전에 기업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이들이 극심하게 방황하고 있다는 얘기다. 흔들리는 공직사회의 실태는 서울경제신문이 24개 중앙부처 2~8급 공무원 335명을 대상으로 한 '공직사회 개혁에 대한 공무원 의식조사' 설문결과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10명 중 8명이 '전직을 고려해봤다'고 답을 했다.
대통령은 관피아라는 극단의 언어를 택한 뒤 대대적인 개혁의 칼날을 내밀었다. 공직사회 내에서는 "이미 이렇게 된 것 차라리 제대로 된 개혁의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출구를 없앤 채 토끼몰이식으로 진행하는 개혁'을 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얘기다. 공직사회의 요구대로 실적에 치우친 개혁은 안 된다. 수십 년간 쌓인 적폐를 걷어내되 특정 집단이 타깃이 아닌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동시에 범죄집단으로 몰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푸는 길이기도 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