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요르단과 맞닿은 이라크 서부 국경지역 전체가 급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주도하는 반군세력의 수중에 넘어갔다. 이에 따라 이라크 사태의 불길이 중동지역 전체로 옮겨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23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반군 측은 전날 시리아 인접도시 알왈리드와 요르단과 맞닿은 투라이빌 등 소도시 2곳을 추가로 점령했다. 앞서 반군은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시리아 국경검문소가 위치한 알카임을 비롯해 루트바·라와·아나 등 이라크 서부지역 요충지도 손에 넣었다. 이로써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정부는 시리아·요르단과 접한 서부지역의 통제권을 모두 잃었다. 이와 더불어 북부 모술과 시리아 국경 사이에 위치한 탈아파르의 공항도 반군이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ISIL을 비롯한 반군 측이 시리아에 있는 동조세력으로부터 무기나 장비 공급 등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또한 22일 미국 CBS방송에 출연해 "이라크 사태가 요르단 같은 미국 동맹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이는 미국에 중장기적 위협이 될 수 있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악명 높은 ISIL의 잔혹한 살인행위도 계속되고 있다. 반군이 점령한 라와·아나 지역의 유력인사 21명이 처형됐고 2006년 당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쿠르드족 출신 라오프 압둘 라만 주심 판사도 16일 ISIL에 생포돼 이틀 뒤 살해됐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보도했다.
반군 측의 기세가 갈수록 거세지는 데 반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중재 움직임은 더딘 상황이다. 이라크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중동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과 만나 "이라크 지도부가 종파주의적 고려를 초월해야 한다"며 시아파인 말리키 총리의 퇴진 및 종파를 초월하는 새 정부 구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이슬람 수니파 지도자는 이에 앞서 케리와 전화통화를 하며 "이번 봉기는 (시아파 말리키가 자행한) 불의에 대한 수니파의 투쟁이지 단순히 ISIL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상황을 오판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이슬람 외교 당국자는 전했다.
반면 시아파의 맹주 격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라크 내정에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이 개입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이라크 내 또 다른 분파집단인 쿠르드족은 이번 사태를 자치권 확대의 기회로 삼으려 하는 등 "미국은 중동 내 인종·부족·분파 등으로 찢긴 세력 간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입장"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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