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와 괴테ㆍ니체ㆍ고갱…. ‘르네상스의 에이즈, 매독’으로 죽은 사람들이다. 고귀한 신분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 매독에 걸린 교황과 각국의 군주도 무수히 많다. 매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감한 것은 20세기 이후. 독일인 의사 에를리히(Paul Ehrlich) 덕분이다. 1854년 3월14일, 슐레지엔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총명했지만 ‘표준’만을 요구하는 선생들에게 엉뚱한 학생으로 불렸다. 고교시절에 ‘인생은 꿈’이라는 주제의 작문 숙제를 받고 ‘인생은 산화작용이다. 꿈은 뇌의 활동이며 뇌의 활동이란 산화작용이기 때문이다’라는 과제물을 제출해 혼난 적도 있다. 의대에 진학해서도 마음이 여린 그는 환자의 비명이나 고통ㆍ죽음에 괴로워했다. 환자를 대면하지 않는 방법을 고른 게 미생물학. 결핵균의 존재를 규명한 로베르트 코흐를 찾아가 혈청학과 면역학 연구에 매달렸다. 1908년에는 면역학 연구 공로로 메치니코프와 함께 노벨 생리ㆍ의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 1년 후, 에를리히는 10년 숙원도 풀었다. 매독균만 공격하는 화합물질을 배양해낸 것. 606번째 인공합성 물질에서 치료제가 추출돼 ‘606’으로 불리는 매독 치료제 살바르산은 ‘부도덕에 대한 신의 징벌을 무효화한다’는 비난에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606에는 이런 이름까지 붙었다. ‘마법의 탄환.’ 과연 606은 완전약품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효과가 탁월했지만 수많은 부작용이 뒤따랐다. 매독균을 확실하게 잡았다는 페니실린(1946년 일반화)도 부작용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은 4세대 항생제를 견디는 병원균까지 나왔다. 병균과 인간의 싸움은 끝이 없다. 오늘도 인간은 돈을 싸들고 ‘마법의 탄환’이라는 무지개를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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