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신흥국들의 통화가치가 최근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 12일 현재 말레이시아 링깃화의 미국 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달러당 4.0275링깃으로,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올라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월9일(달러당 4.7125링깃)이후 최고 수준이다. 같은 날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달러당 1만3,800루피아로 역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6월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브라질의 헤알화나 칠레의 페소화 환율은 각각 2002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역시 금융위기 때보다도 통화가치가 낮은 상태다. 브라질 헤알화는 올해 들어서만 30%가량 평가절하됐다. 최근 멕시코 페소화의 통화가치는 2009년 3월이후, 남아공화국 랜드화는 2001년 12월이후 최저 수준이고, 터키의 리라화는 아예 역사상 제일 낮은 상태다.
이처럼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공통적인 원인으로는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꼽힌다. 여기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은 중국의 경기둔화 영향으로, 또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여파로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이중삼중의 문제를 겪고 있다.
이지형 HMC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2013년 긴축발작(테이퍼 탠트럼) 이후 수출 증가 등을 위해 통화가치 절하를 용인하던 멕시코,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절하속도가 빨라지자 대응을 강화하고 나섰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브라질은 기준금리를 2014년 10월 이후 7차례나 올려 현재는 연 14.25%에 달한다. 최근에는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11일부터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면서 신흥국 통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통화가치 하락이 외국인 투자자 이탈→외환위기로 확산되면 한국 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낸 ‘말레이시아 금융불안 심화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현지 금융불안이 한층 더 심화되면서 주변국으로 확산되면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지형 연구원은 ‘불안감이 커져가는 신흥국’이라는 보고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가 큰 국가로 브라질, 러시아, 터키, 남아공, 말레이시아 등을 거론하면서 이 가운데 “말레이시아가 위기 발생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보인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 연구원은 말레이시아가 링깃화 가치 폭락으로 유동성 경색 상황을 맞더라도 통화스와프 등에 힘입어 외환위기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적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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