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자 1000여명 확보… 기획부터 다양한 분야 묶어
종이·전자책 함께 만들면 지식 폭·깊이 커져 시너지
온·오프라인 포괄하는 지식 생산-유통구조 고민
올부터 전자책 적극 진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5월에 첫 기획물로 선뵐 것
"휴머니스트가 확보한 1,000여명의 인문학 저자를 어떻게 하나의 미디어로 연결할 것인가, 어떻게 온·오프라인 출판시장을 포괄하는 지식의 생산·유통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다양한 분야·연령의 저자를 묶고 종이책과 전자책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출판하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겁니다. 저자와 책이 세분화되고 융합되는 만큼 지식의 폭과 넓이가 확장되고 기존의 역사·인문 저술도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쓰일 겁니다. 그렇게 지식은 계속 중첩되고 서로 영향을 미치며 재구성되는 거죠."
도서출판 휴머니스트의 김학원(53·사진) 대표는 출판시장에 디지털 바람이 불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며 단행본 개념이 기존 종이책 한 권 단위가 아니라 그 안의 한 장(章) 한 장이 한 권으로 기능한다는 것.
"인문학 책이 10권이면 전자책은 300권도 가능해요. 이런 식이면 15년 정도 후에는 휴머니스트가 연간 500여종, 다시 15년이 지나면 연간 1,000종도 출간 가능합니다. 지금보다 10배 정도 늘어나는 거죠. 그 시작으로 독자에게 농축된 지식의 맛을 전하는 인문학 에세이 시리즈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생운동 빚 때문에 시작한 출판일이 천직으로=지금은 인문학 책의 강자로 연 매출 100억원이 넘는 번듯하게 성공한 출판사 사장이지만, 사실 그는 출판일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81학번인 그는 학생운동에 빠져 학교에서 세 차례 제적을 당했고 졸업에는 꼬박 15년이 걸렸다. 그 와중에 감옥과 현장운동으로 꼬박 8년을 넘겼고 그 끝에 기관지 '노동전선' 편집장을 하며 인쇄소 빚 2,000만원까지 떠안았다, 당시로는 큰 빚이 출판일의 시작이 됐다.
절박한 마음으로 오로지 출판 기획에 매달렸다. 궁리 끝에 통한 게 '지혜가 되는 창' 시리즈. 본고사와 논술·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며 시기도 맞아떨어졌다. 진중권·이진경·안효상·남경태 등 내는 책마다 반응이 좋았다. 빚은 1년 만에 다 갚았고 서른넷에 출판사 주간 자리에 앉았다. 몇 년 더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며 본격적인 출판 공부가 시작됐다. 주말마다 일본을 드나들며 한창 잘나가던 일본 출판시장을 배웠다. 운동권 시절 일본에서 몰래 들여온 사회주의 원서를 번역하며 배운 일본어가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그 출판사 일을 해주는 조건으로 아는 선배 출판사 한 켠에 책상을 놓고 시작했다. 그렇게 1년여간 책을 기획하고 저자를 만났다. 드디어 동교동 철길 옆 작고 허름한 곳에 직접 페인트칠까지 하며 사무실을 차렸다.
그렇게 2001년 도서출판 휴머니스트가 설립됐고 속도가 붙자 3년여 만에 출간 종수가 100권을 채웠다. 지난 14년간 연간 80~100여종씩 총 750여종의 책을 내놓았다. 눈여겨볼 점은 신간 대부분이, 그의 말로는 90%가 국내 저자의 책이라는 것. 국내 출판사 가운데 국내 저자의 신간 비중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국내 출판시장의 절반가량이 해외저자 번역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드는 책 역시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그 90%가 죄다 인문·역사 교양서에 전문 학술서적이다. 언뜻 생각해도 돈이 되기 어려운 구조인데 불과 10여년 만에 홍익대 앞에 사옥까지 새로 올렸다. 지난해에는 매출도 100억원을 넘겼다.
"원래 목표가 세대를 아우르는 출판 라인업입니다. 초중고교생과 대학생·성인 등 각 세대가 모두 읽을 만한 지식교양 브랜드를 만드는 거죠. 프랑스 갈리마르나 독일 체아백 등 유럽 출판사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100년 넘게 세월을 견딘 출판사들은 통상 30년 정도인 세대 교체주기를 세 번 이상 가지면서 3대가 모두 한 출판사의 책을 읽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자기네 책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읽어달라는 거죠. 저 역시 의식적으로 그런 포트폴리오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내년이면 15주년을 맞는 휴머니스트로서는 그 주기를 절반 정도로 봤다. "내년까지 책 종수를 1,000여종으로 맞추면 기본 도서목록을 갖춘 겁니다. 앞으로 15년이 지나면 우리 책을 읽어온 독자층이 50대가 되고, 다시 15년이 흐르면 70대를 넘기게 됩니다. 꾸준히 흐름에 맞춰 책을 낸다면 30년 정도에 3세대를 아우르는 목록을 갖게 되는 거죠."
◇기획단계서 종이·전자책 함께 생산하는 출판 시스템 구축=김 대표는 이미 이를 위한 종이·전자책을 아우르는 통합 출판 전담팀(TFT)을 꾸렸고 오는 6~7월쯤이면 그림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종이·전자책 양쪽으로 바로 활용하는 통합적인 출판, 나아가 독자에게 바로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유통채널에 관한 것이다.
"올해부터 전자책 부문에 적극적으로 나갈 겁니다. 5월에 선보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개정판을 시작으로 전용단말기와 스마트폰·앱북에서 동시에 볼 수 있게 개발합니다. 현란한 그래픽이나 음향 같은 기술적 접근은 독서에 오히려 방해됩니다. 이를테면 인물사전 분량을 2배인 600여명으로 늘리고 인물별 검색 기능도 넣는 등 텍스트의 장점을 살리는 방식이 될 겁니다."
그는 연내 진출할 것으로 보이는 아마존이 먼저 국내 쇼핑몰 업체를 공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업체가 아쉬워하는 해외 판로를 제공하며 국내 시장에 접근하고, 이후 문화 콘텐츠를 얹는 수순으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자책 전용단말기 킨들의 도입 시점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출판사는 국내 저자와의 견고한 네트워크가 있지만 아마존은 전 세계적인 고객 접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출판사에 '당신은 당신 고객을 모른다'는 메시지를 던질 정도죠. 결국 장기적으로는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 그것을 둘러싼 전쟁입니다. 과거 무대 위 주인공이 저자, 관객이 독자였다면 이제는 유기적으로 연관되는 하나의 운동장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한편 지난해 11월 시행된 도서정가제의 영향에 대해 그는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도서정가제가 처음 시행됐던 2003년께도 책 판매가 20~30% 정도 줄었지만 1년 정도 지나자 이전의 90%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것이다. 다만 출판사에서 서점·유통업체로 책을 공급하는 가격비율인 공급률은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반기 내에 공급률(정가 대비 공급가격)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서점과 도매상에 과도하게 힘이 있다 보니 출판사들이 너무 책을 할인해서 공급하고 있어요.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그 혜택이 출판사와 저자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서점과 출판사 간에 제대로 된 합의가 필요합니다."
● 김학원 대표는 |
출판 편집자 최고의 자질은 '지적 호기심' 이재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