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길을 찾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준다. 백56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모든 길이 사지로 가는 게 확실하고 딱 한 길만이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결론도 하나일 뿐이다. 그 불확실한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백56으로 하나 몰아놓고 58로 뻗은 것은 바로 그 불확실한 코스를 지향한 것이었다. 다른 모든 변화는 모두가 백의 파탄이다. 참고도1의 백1로 가만히 뻗는 것은 흑2 이하 6으로 백이 망한다. 참고도2의 백1로 꽉 잇고 버티는 것은 흑2 이하 흑16으로 역시 흑이 망한 모습이다. 백이 우변에서 흑 6점을 잡은 것도 제법 크지만 중앙쪽 흑대마가 빈사 상태가 된 것이 더 큰 아픔이다. 구리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길로만 가고 있다. 흑61의 호구와 흑63의 뭉툭한 전진. 뒤이어 65의 뭉툭한 차단. 초심자의 행마 같은 이 쉬운 수순들이 백을 난처하게 몰고 간다. 백66은 비장한 결단이다. 중원쪽 백대마가 미생인 상태에서 이런 끝내기 같은 수를 두다니. 검토실에서는 쓸데없는 실리추구라는 지탄이 빗발쳤다. 그러나 서봉수9단만은 백66을 나무라지 않았다. "바로 이런 것이 이세돌류의 승부법이라고 볼 수 있어."(서봉수) 시쳇말로 '배째라'고 버티는 작전인데 이렇게 되면 흑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원쪽 흑을 꼭 잡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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