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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전문의 일용직 노동자들을 불렀다. 화가는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림을 주며 "걸레로 닦으라"고 했다. 고용된 노동자들은 한참씩 걸레질을 했고, 작가가 "그만!"이라고 외친 순간 작품이 완성됐다.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 전시 중인 현대미술가 김홍석(50·상명대 교수)의 작품 'MOP 131014 걸레질'이다. 제작 과정에 대한 이같은 설명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심오한 정신세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라 했어도 믿을 법한 작품들이다.
맞은 편에는 반듯한 선(線)을 반복적으로 그린 그림들, 볼펜으로 종이를 빼곡하게 채운 작품들이 다양하게 걸려있다. 마치 거장 이우환의 '선으로부터'를 흉내낸 듯하다. 이것 역시 작가가 고용한 노동자들이 주어진 붓과 물감으로 그린 것들이다.
"고용된 노동자들은 쉬운 일거리라며 좋아하더군요. 그 결과물이 이렇게 작품이 되고 비싸게 팔릴 것이란 사실은, 묻지 않았기에 말하지도 않았지만요. 그렇가면 이것(작품)은 제 것일까요? 이것을 미술가의 지적재산으로 인정해 주실건가요?"
오히려 작가가 되물었다. 따져보면 이미 1950년대 앤디 워홀이 작업실을 '팩토리'라 부르며 조수들을 시켜 그림을 그리게 했을 때부터, 작품은 작가가 아닌 고용된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됐다.
김 작가는 "내가 주문할 때 '노동의 결과'가 아름다운지는 중요치 않았다"며 사회·계층간 소통을 갈망하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 이런 것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고용된 노동자는 청소를 했어야 하는게 기존 '약속'이지만, 작가는 "그 약속에 의한 게 아닌 것도 만들고 싶었다"는 부연과 함께.
찌그러진 캐비넷에 사포질로 색을 낸 작품 '무제', 창문 틈새용 실리콘으로 빽빽하게 선을 그린 '좋은 창문을 만들기 위한 연습' 등 작품 대부분은 작가의 지시에 의해 타인의 손으로 제작됐다. 기발한 발상인데다, 생각외로 '보기 좋다'는 점 또한 놀랍다. 김홍석은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 개인전 등을 연 실력파로 해외에서도 작품이 고가에 팔리고 있다.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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