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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스웨덴은 묘한 국가다. 우선 귀족계급을 인정하는 입헌군주제와 사회주의의 어색한 조화를 절묘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몇 개의 대기업이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경제력 집중이 심하지만 반재벌 정서가 없다는 점,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와 경제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유럽 전체가 재정위기의 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스웨덴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2009년 5.6%, 2010년 4.0%대의 건실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증증환자 스웨덴의 부활 비결
그러나 복지병 중증환자였던 스웨덴이 '성장과 복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행운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말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올해의 재무장관'으로 뽑은 안데르스 보리 재무장관이 부활의 주인공이다. 2006년 약관 36세에 경제 수장에 오른 그는 '복지병은 에이즈와 같다'며 전통적 복지제도를 과감하게 뜯어고쳤다. 법인세를 낮춰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복지제도의 기본 틀을 무임승차형에서 '일하는 복지'로 전환한 것이다. '더 많은 복지를 원하면 더 일해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자 기업활동이 활발해지고 일자리와 근로의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복지 경쟁이 치열하다. 보편적 복지니 선택적 복지니 전문용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가운데 복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치가 복지를 선거전략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우선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단어 자체가 정치 구호로 안성맞춤이다. 복지 수요가 커지고 있는 현실과도 맞아떨어진다. 양극화와 중산층의 위기, 저성장에 따른 일자리 부족 등에 따라 취약계층이 늘면서 사회보장을 비롯한 복지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못 가진 자로 나눠지고 갈등이 증폭될 때 정치적 셈법으로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1인=1표'라는 민주적 정치 논리가 작동하는 선거의 속성상 '1달러=1표'의 불평등에 기초한 경제 논리는 밀려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복지 없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생각하기 어렵다. 헤지펀드의 대부이자 자선사업가인 조지 소로스는 '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빗나간 것은 정치의 견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정도와 방법이다.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선심성 공약과 같은 무책임한 방식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 현실은 기본적인 원칙과 지속 가능성, 국민적 공감대도 없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복지를 이용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반값 공약, 무상 시리즈, 증세 논란 등이 단적인 사례다. 특히 느닷없이 최고세율을 신설해 소득세제를 누더기로 만든 '부자증세'는 대표적인 경우다. 저소득층 또는 복지에 실질적으로 도움도 안 되면서 '부자 때리기'를 통해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부담을 낮추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함으로써 국가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게 됐다.
성장과 선순환구조 확립이 과제
김황식 총리는 취임 직후 지하철 노인 무료 승차제의 폐지를 거론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복지 기득권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입증하는 사례다. 한 번 준 것은 다시 거둬들이기가 불가능한 것이 복지의 특성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환상을 약속한 영국 경제가 파탄 난 것을 비롯해 복지천국을 꿈꾼 대부분의 국가들은 어김없이 복지병에 걸려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우리의 복지 수준이 스웨덴의 보리 장관이 필요한 정도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복지를 성장의 대척점으로 보는 후진적 시각도 잘못이다. 그러나 위험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뻔한 무원칙 복지를 되풀이하는 것은 복지 후발국으로서의 이점을 내팽개치는 것이다.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지속 가능한 복지모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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