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개막한 프랑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는 원작의 미덕은 물론 뮤지컬 본연의 맛마저 살려내지 못한 채 아쉬움만 남겼다.
마가렛 미첼의 원작 소설과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바람사는 미국 남북전쟁과 전후 재건을 배경으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사랑과 인간적인 성장 이야기를 그린다. 빈약한 드라마는 그러나 그 누구의 사랑도, 인생도 담아내지 못했다. 이 작품은 스칼렛이 16살이었던 1861년부터 그녀가 28살 되던 해까지 무려 12년을 아우른다. 원작 소설은 1,000페이지 넘는 분량으로, 동명 영화는 4시간이라는 긴 시간 속에 담아낸 이야기를 뮤지컬은 2시간 20분으로 압축했다. 이 속에 원작의 줄거리를 모두 녹여 내려다보니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촘촘한 고리들은 사라지고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설득력을 잃은 채 표류한다. 맥락의 부재 속에 스칼렛의 감정선은 뜬금없이 돌변하며 관객에게 피로감만 안겨준다. 영화 대비 짧은 러닝타임만 탓하기엔 선택과 집중보단 원작의 명장면을 흉내 내는 데 급급했던 안일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MR(녹음된 반주)로 진행되는 뮤지컬인만큼 음향 조절에는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MR이 배우의 목소리를 덮어 가사가 진동 속에 파묻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공연을 거듭하며 개선되리라 본다.
그나마 스칼렛 역의 바다가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력으로 주인공 몫을 톡톡히 하고 김보경(멜라니 역), 마이클 리(에슐리 역)는 감성을 자극하는 열창으로 지친 관객을 위로한다. 노예장 역의 박송권 역시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과 가창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우들의 열연과 열창이 어설픈 드라마에 파묻힌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작사는 음향 문제부터 일부 장면을 수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특정 배우의 가사 전달력이나 음향 문제야 공연을 거듭하며 나아질 여지가 있다지만, 부실한 스토리를 보완하려면 큰 공사가 필요해 보인다. 과연 무대 위에 내일의 태양은 뜰 수 있을까. 2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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