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 78년 시작된 개혁ㆍ개방에 이어 또 하나의 거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0년이 실물 개방과 외자 유치를 통한 슈퍼 경제대국으로의 도약 시기였다면 이제는 자국 위안화의 개방ㆍ국제화를 지렛대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등 주변국,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위안화의 우산 아래 품으려는 장대한 전략이다. 지난 28일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본토가 아닌 해외(홍콩)에서 사상 처음으로 60억위안 규모의 인민폐 국채를 발행한 것. 리용 중국 재무부 부부장은 이날 인민폐 발행 기념식에서 "홍콩에서의 위안화 본드 시장이 위안화가 세계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위안화 국제화의 전초 기지가 된 홍콩은 위안화 절상 기대감에다 고금리의 위안화 표시 국채가 발행되면서 위안화 투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소시에트 제네랄의 길버트 체 중국담당 책임자는 "기관 투자가는 물론 개인들까지 인민폐 국채를 사려는 열기가 대단하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무역대국에서 금융강국으로=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은 치밀하면서도 장기적이다. 기축통화 지위는 단순히 경제 규모가 커서 되는 게 아니라 한 나라의 자본시장 선진화 및 개방화 수준부터 군사력 정도, 글로벌 시장의 인정 등 복잡한 방정식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따라 중국은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최근 "기축 통화는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먼저 슈퍼 무역대국을 기반으로 주변국부터 위안화 거래 블록을 넓혀나가고 있다. 1단계로 지난 7월부터 상하이ㆍ광저우 등 본토 5개 도시와 홍콩ㆍ마카오간에 위안화 무역 결제를 실시한데 이어 2단계로 주변국인 아세안과의 위안화 무역 결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갖고있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 대표는 "중국은 아세안을 시작으로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위안화 블록을 넓히면서 점차 글로벌 기축 통화로 나아간다는 장기 전략 아래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또 2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 등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위안화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재원이 고갈된 IMF 지원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은 IMF가 발행한 채권 500억달러어치를 매입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채권을 위안화로 산다는 것과 IMF가 이들 자금을 위기에 처한 국가에 위안화로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무역거래 시장뿐 아니라 채권 등 자본시장에서도 위안화를 국제화시켜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위안화의 국제화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외환ㆍ자본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은데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견제 등으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얘기다. 이철성 한국은행 베이징 사무소장은 "위안화가 완전한 자유 태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여전해 위안화의 국제화는 적어도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선진국 클럽인 G8 회원인 일본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위상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중국 경제와 이에 따른 위안화의 부상이 반가울 리 없다. 당장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신임 총리는 최근 G20 회의에서 "20개국의 많은 국가가 참여하다 보면 사전 준비작업이 힘들고 의사결정이 힘들 수 있다"며 G20 정상회의의 지위 격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G20에서 개도국의 맏형으로 발언권이 세지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위안화 블록' 적극 활용해야= 무역대국을 지렛대로 한 위안화 블록이 갈수록 커질 것인 만큼 한국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칠레 등 개도국을 중심으로 이미 20여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중국은 내년부터 대만과 아세안과 FTA 체결을 앞두고있고 호주, 인도와도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아세안을 포함한 이들 거대 경제 블록이 중국과 묶이고 있는 만큼 한국도 서둘러 중국과의 FTA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당장 대만이 내년부터 중국과 FTA를 체결하면 반도체, LCD 등 첨단 제품 분야에서 대만과 중국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기업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대만 업체는 FTA 체결로 10% 안팎의 관세가 없어져 한국 기업과 가격 경쟁력 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코트라 김상구 베이징 사무소 대표는 "중국은 한국과의 FTA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한국과 중국의 FTA 연구는 이미 끝났고 한국 정부의 정치적 결단만 남아있는 상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국과 일본 사이의 지정학적 위치를 적극 활용해 국제 무대에서의 중간자적 균형 외교를 통해 발언권을 높여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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