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은 어쩌다 서양에 뒤졌을까. 로마와 파리ㆍ런던이 원시 상태일 때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극동과 인도ㆍ중동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내준 이유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책자가 있다. 53쪽 분량의 지도첩 ‘지구의 무대(Theatrum Orbis Terrarum)’. 엉성하지만 5대양6대주를 제대로 담은 최초의 현대식 지도로 불리는 ‘지구의 무대’ 출간시기가 1570년 5월20일. 어떻게 439년 전에 이런 지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도전의 결실이다. 신대륙 발견으로 대표되는 모험과 탐험이 누적된 결과가 ‘지구의 무대’다. 제작자는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플랑드르(오늘날 네덜란드와 벨기에 접경)에서 태어난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ㆍ당시 43세). 판화가ㆍ지도제작자인 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탐험가들이 그린 지도를 10년 동안 모아 대업을 이뤄냈다. 무려 2절지(가로 86㎝, 세로 58㎝) 크기의 각면에 대형 지도 70점을 담은 그의 라틴어 지도첩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웬만한 주택 값과 맞먹었다는 지도첩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망한 1598년까지 2,200부가 팔려나갔다. 새로운 그림이 추가되고 분량도 늘어난 개정판은 1724년까지 7개 국어로 번역돼 7,200부가 찍혔다. 유럽에 뿌려진 그의 지도첩은 호기심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탐험의욕을 자극해 새로운 지리상의 발견을 낳고 종국에는 서구의 세계지배로 이어졌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과정이 반복된 결과다. 경제사학자 앵거스 메디슨의 추산에 따르면 16세기까지 유럽의 1인당 국민소득(PER GDP)은 평균 496달러로 중국의 600달러에 뒤졌지만 지도첩이 나온 후 역전됐다. 지도첩 ‘세계의 무대’가 세계를 유럽의 독무대로 안겨준 셈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