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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도입이 무산됐던 전월세상한제 입법이 다시 가시권에 들어왔다. 18대 국회에서는 정부의 강한 반대와 여당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결국 무산됐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총선 공약을 통해 여야 공히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자는 '총론'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공약으로 내건 정책인데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하반기에 열릴 19대 국회에서 여야가 '서민 표심' 잡기 입법 경쟁을 벌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반(反)시장적 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대해왔던 정부의 저항은 정권 말기로 갈수록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월세상한제는 세입자를 위해 이상적인 정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제도를 현실에 옮길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전월세상한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짚어본다.
◇임대료는 못 잡고 세입자만 잡을라=시장 전문가들은 전월세상한제에 적지 않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어설픈 전월세상한제 도입이 오히려 집주인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겨 임대료를 더 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제도 도입 초기의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지난 1989년 정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고쳐 의무 전세 임대차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다. 전셋값 급등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해지자 내놓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1989년 서울 전세금 상승률은 23.7%, 다음해에도 16.2%에 달했다. 2년간 임대료를 못 올릴 것을 계산한 집주인들이 미리 전세금을 올리려는 심리 때문에 시장에 대혼란이 일어났다.
특히 야당안대로 세입자에게 1회의 계약갱신청구권을 주게 되면 총 4년에 걸쳐 임대료가 사실상 고정되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향후 기대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대폭 임대료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
경제학 원론에도 등장하듯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면 이중 가격이 형성될 개연성도 높다. 공식적인 계약서에는 임대료를 낮게 쓰지만 이면계약을 통해 실제 임대료는 높게 형성되는 식이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전월세상한제는 어설프게 도입하면 임대료는 안정시키지 못하고 세입자의 주거불안만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안은 '무용지물', 야당안은 ' 비현실적'=여야의 전월세상한제 도입 방안은 총론은 같지만 각론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부분적ㆍ일시적 상한제 도입을 주장하는 여당안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전면적 도입을 주장하는 야당안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로 현실에 옮기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라는 평가다.
여당안은 전월세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는 지역에 한해 물가상승률의 3배 이상으로 임대료를 올리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측은 "여당안대로라면 전셋값이 오른 후 상한제를 적용하는 셈인데 가격안정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이 없으면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면 그만"이라고 비판했다. 국토해양부의 한 관계자 역시 "주택투기지역도 지정과 해제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묶기도 풀기도 힘들다"며 "전국을 대상으로 매번 전월세상한제 지역을 지정ㆍ해제하려면 엄청난 행정력이 낭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야당안은 너무 급진적이라는 지적이다. 야당안은 임대료 인상률을 전국적으로 연 5%로 묶고 세입자에게 1회에 한해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해 최대 4년간 기한을 보장해주는 게 골자다. 또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경우 전환이자율을 시장금리 수준으로 낮춰서 월세 전환을 제한한다.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기 위한 전제로 민간 임대주택을 등록할 경우 취득세ㆍ소득세 등의 감면 혜택과 집수리지용 지원 같은 인센티브도 동시에 도입한다. 사실상 '민간임대주택 공공관리제'실시다.
이 같은 야당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말하고 있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야당안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제약으로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반발 불 보듯=전월세상한제에 대한 집주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 상당수는 세입자이면서 집주인인 상황이다. 통계청 가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주택을 소유한 가구의 비율인 자가보유율은 61.3%다. 자가거주율은 54.2%나 된다. 본인은 집을 다른 데 소유하고 살고 있는 집은 다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전월세 가격이 올라야 상한제 도입 논의에 탄력에 붙는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결국 하반기 전세시장 동향이 전월세상한제 도입 논의의 키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전세시장이 안정됐을 때 미리 도입돼야 하지만 시장이 안정되면 국회 논의 동력이 떨어진다"며 "하반기 대(對)국회 설득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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