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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사라지지 않는 '정치 경영'의 독버섯

관치금융의 폐해 드러났건만 민간 대기업까지 갑질에 희생

자유로운 기업 경영 보장해야



대기업 홍보 임원들의 최근 저녁 자리. 술이 몇 순배 돌 즈음, 취기가 오른 A씨가 "정말∼도는 줄 알았다"며 불쑥 소리를 높였다. 옆 사람들이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향했다. "왜 그래! 갑자기."

그가 꺼낸 말은 다름 아닌 올 한 해 기업들의 '최대 현안(?)'이었던 창조경제센터였다. 푸념은 계속됐다.

"온갖 신문에 잘 써달라 사정하고 광고까지 한 면씩 하고∼. 죽어라 했더니 ○○신문이 다른 그룹보다 기사를 작게 썼다고 깨지기만 했네."

30분 넘게 계속된 창조센터 얘기의 결론은 뜻밖에도 간단했다. "다음 정권은 또 어떤 '아이디어'를 내놓을까."

한 해 내내 재계를 달궜던 창조센터 개소식이 갈무리됐다. 며칠 전에는 삼성의 대구창조센터 1주년이 다시 지면을 잔뜩 차지했다. 아마도 현 정권 마지막까지 창조센터는 기업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아이템이 될 것이다.

물론 창조센터를 무조건 사시(斜視)를 뜨고 볼 일은 아니다. 낙후된 지방에 창업의 불씨를 살린다는 좋은 뜻도 담겨 있다. 하지만 목적이 선하다고 과정을 모두 긍정으로 바꿀 수는 없다.

특히 기업 경영은 그렇다.

시장경제에서 가장 소중한 덕목은 '자율'이다. 법규만 지킨다면 사기업은 제 3자의 개입에서 최대한 자유로워야 한다. 최고경영자(CEO)가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경영을 했다면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배임이다.

이런 잣대로 볼 때 지금의 창조센터가 CEO들의 순수한 열정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인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CEO들은 현 정권 끝까지 입을 다물겠지만.)



요즘 기업인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청년희망펀드'다. 정권마다 많은 정책적 산물(産物)이 태어나지만 그래도 인과관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청년희망펀드는 출생 동기가 참 기이하다.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월급의 20%를 기부한다고 하자, 머리 좋은 공무원들은 금세 '희망펀드'라는 멋진 이름을 만들어냈다.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은 청와대의 뜻이 뭔지 물어보느라 여념이 없다. 총수에 약점이 있는 A기업은 청와대 출입기자에까지 어떻게 돈을 내면 되는지 물어보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대기업의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지만 개인의 자발적 참여를 얘기할 때 뒷짐질 총수가 얼마나 있을까. CEO들은 이 시간에도 '희망(펀드) 고문'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창조센터나 희망펀드는 목적이라도 선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기업 주변에는 볼썽사나운 일이 너무 많다. 대기업의 '갑질'이 비판 받지만 기업을 향한 정부와 정치인, 돈을 빌려준 은행들의 '갑질'은 정말 꼴불견이다.

최근 5년 동안 한 국책은행 퇴직자 전원이 거래기업에 재취업했다는 한 국회의원의 주장, 주인이 없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특별한 자문 실적도 없이 억대 연봉 등을 받은 자문역이 60명에 달한다는 또 다른 의원의 지적까지…, 이것이야말로 기업을 향한 '슈퍼 갑질'이다.

그나마 이런 것은 외부에 노출된 편린에 불과하다.

내로라하는 기업과 금융회사에 고위 관료나 정치인 자제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다. 수많은 직장이 있건만 하필 특정 기업에 특정 부처의 고위 관료나 자제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일까. 아버지의 머리를 닮아 좋은 학교를 다녀서 일까, 아니면 정말로 '잘난 아버지'를 둔 그 자체 때문일까.

우리 금융회사의 수준이 떨어지는 이유로 '정치금융'이 곧잘 얘기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독버섯이 민간 대기업에 더 심하게 퍼져 있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만 '정치경영'의 독이 우리 기업을 무섭게 파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김영기 산업부장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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