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의 구원투수에 오른 마리오 몬티 총리는 4일(현지시간) 당초 예정보다 국무회의를 하루 앞당겨 개최했다. 그는 9일로 예정된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앞두고 하루라도 빨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날 200억 유로에 이르는 대담한 긴축안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는 내년도 긴축 예산안 투표를 앞두고 이에 반대하는격렬한 시위가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 은행들은 국민들이 앞다퉈 예금을 빼내가는 바람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양대 위기 진앙지로 꼽히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최근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따른 대처과정에서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한동안 혼란이 예상됐던 이탈리아는 정치권의 진두지휘아래 국민들이 단합해 발빠르게 난국을 헤쳐나가는 반면 그리스는 연일 정치권의 분열과 긴축 반대시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골칫거리로 낙인 찍히고 있다. 몬티 총리는 이날 긴축안을 통해 여성 근로자의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내년부터 현행 60세에서 62세로 늦춘 뒤 2018년까지 66세로 추가 연장하기로 했다. 또 1가구 1주택 재산세를 부활하고 부가가치세도 내년 2ㆍ4분기부터 21%에서 23%로 늘리기로 했다. 몬티 총리는 또 솔선수범해 총리로서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신도 허리띠를 졸라맬 테니 국민들에게 긴축의 고통을 나누자고 제안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주 초 한때 7.237%까지 치솟았다가 정부의 발빠른 대응에 힘입어 1일에는 6.652%로 뚜렷한 하양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그리스는 연일 매도공세가 이어지며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1일 32.004%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양국의 긴축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은행협회는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국채 매입을 촉구해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일부 노조의 반대가 예상되긴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권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와 달리 그리스 국민들의 모럴해저드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스 국민들은 도로 통행료 납부를 거부하는'덴 플리로노'시위를 벌이는 등 조직적으로 세금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뱅크런'조짐도 확산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지난 9~10월동안 그리스 은행에서 전체 예금의 5%인 122억유로가 빠져나갔다. 전문가들은 같은 남유럽 국가인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이처럼 대조를 보이는 것은 유로존에 느끼는 책임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탈리아는 자국으로 인해 유로존이 붕괴되는 것을 결코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유로존으로부터 계속해서 긴축을 요구받은 나머지 유로존에 대한 애정이 식을대로 식은 상태다. 뉴욕타임스는"그리스 국민들은 이미 유로존 탈퇴에 대비해 대체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다독이고 있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긴축을 강요받느니 유로존을 탈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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