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27로 가만히 참아둔 것은 백에게 수습의 리듬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창하오가 백28로 날아오르자 이세돌은 흑29로 어깨를 짚어 주저앉힌다. 다시 백30으로 날아오르자 흑31로 어깨를 짚어 주저앉힌다. 비로소 창하오는 백32로 전개하여 모양을 갖추었다. "이 정도면 거의 수습이 된 모습입니다."(목진석) 검토실의 의견은 똑같았다. 이 정도면 백이 그리 심하게 몰릴 염려는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았다. 즉시 흑33으로 껴붙여 공격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정말 잡아먹을 작정이에요."(김성룡) "잡힐 돌은 아닌데…."(목진석) "알 수 없지. 정말 잡히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하기야 이 백돌이 무사히 수습되고 나면 원래 웅장했던 흑의 세력은 아주 무색하게 될 거야."(김성룡) 무려 20분을 생각하고 창하오는 백34로 붙였다. 검토실의 바둑판 위에 참고도의 흑1 이하 백4가 놓였다. "이것으로 대충…."(목진석) 수습이 된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다시 흑35의 껴붙임이 등장했으니. "완전히 죽기살기네."(김성룡) 바둑용어에 '하수의 껴붙임'이라는 것이 있다. 원래 이런 껴붙임은 무리성 행마로 취급된다. 초보자들의 철없는 행마로 여겨진다. 바둑도장의 수련생들이 이런 행마를 하면 사범들에게 꾸지람을 받기 일쑤인데 절정 고수인 이세돌이 태연히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흑이 너무 사납게 휘몰아치는 느낌이야.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아."(김성룡) 휴직계를 제출하고 그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세돌이다. 심사가 편할 리가 없다. 그 불편한 심사가 과격한 공격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검토실에는 괴이한 정적이 감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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