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으로 시작한 하루가 지상군 투입으로 끝났다."
팔레스타인 가자 주민에게 물·식량 등을 지원하기 위한 17일(현지시간) 5시간 동안의 인도주의적 임시 휴전은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의 이 같은 보도처럼 이스라엘의 대규모 지상군 투입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지난 2012년의 극적 합의가 5시간에 걸친 휴전 때 재연될 수도 있다는 국제사회의 기대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둘러싼 지정학적 역학관계는 과거보다 더욱 얽히고설켜 이번 이·팔 충돌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최근의 이·팔 갈등해결의 모범사례로 염두에 둔 것은 2012년의 이른바 '이집트 모델'이다. 183명(팔레스타인인 177명)의 생명을 앗아간 2012년 이·팔 충돌은 이른바 '8일 전쟁' 끝에 이집트의 중재로 가까스로 정전에 합의했다. 전통적 친미 아랍국가인 이집트의 당시 대통령이었던 무함마드 무르시가 자신과 같은 계열인 하마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준 덕분이다.
반면 현재의 이집트 집권세력은 군부 출신으로 무르시를 축출한 압둘팟타흐 시시 체제로 하마스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2012년과 달리 최근 이집트가 내놓은 중재안을 하마스가 단번에 거절한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무르시와 달리 시시는 이번 사태로 하마스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바라고 있다"며 "예전처럼 이집트의 중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집트를 대신해 최근 중재자로 나선 카타르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하마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려는 카타르의 중재안을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현재 자국의 협상 파트너로 하마스가 아닌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원하고 있다. 또 다른 중재 가능국으로 거론되는 터키는 "지금껏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FP는 전했다.
하마스 측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휴전의 선결조건으로 △가자지구 봉쇄 해제 △이집트 접경인 라파 지역의 국경개방 △이스라엘에 수감 중인 재소자 석방 등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 역시 현재의 정치적 역학관계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실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내각은 나프탈리 베네트 경제장관을 필두로 한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이라 죄수석방 등을 지렛대로 삼는 협상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라파 지역 개방 역시 하마스와 적대 관계에 있는 이집트가 허락할 리 없다. FP는 "하마스의 요구조건은 어느 것 하나 정치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것들"이라며 "2012년 때와 비교하면 지정학적 환경이 매우 급박하게 변해버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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