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치마의 숙녀들'. 독일군이 1·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보병부대의 이름이다. 전통치마를 입은 스코틀랜드병사들은 총탄이 빗발쳐도 전진하는 용맹으로 위명을 떨쳤다. 스코틀랜드의 숙적은 전통적으로 잉글랜드.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축구경기라도 가지면 스코트인들은 전자를 응원하는 경우가 많다. 멜 깁슨 주연 1995년 개봉작 '브레이브 하트'도 14세기 초 잉글랜드의 압제에 맞선 스코트인들의 저항을 그렸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은 민족 구성부터 다르다. 로마 침공기에 끝까지 저항한 켈트족의 순수성을 스코틀랜드가 유지한 반면 잉글랜드는 켈트에 라틴(로마)·데인·색슨·앵글·노르만의 피가 섞였다. 반복과 대립에도 왕실 간 혼인으로 1603년부터는 공동국왕을 모신 두 나라는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의 선결의로 합쳐졌다. 억센 스코트인들이 통합을 자처한 이유는 온 국민이 한두푼씩 모아 투자했던 다리엔(지금의 파나마 지역) 개발 사업 실패 때문.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가 통합을 부른 셈이다.
△통합후 스코트인들은 오랜 저항이 무색할 만큼 대영제국의 발전을 이끌었다. 두 차례 반란이 있었지만 왕위계승에 대한 불만이었지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구 비율 6:1 상황에서도 영국동인도회사의 사무관급 이상 관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스코트인들은 제국의 확장에 기여했다. 19세기 내내 브리튼 전체 의사의 90%가 스코틀랜드 지역에 나왔다.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데이비드 흄·프란시스 베이컨·제임스 와트·코난 도일이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3백년 넘게 브리튼의 일원으로 지내온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추진 중이다. 찬반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오는 9월이면 분리 독립 여부가 결정난다. 1970년대 급부상했다 잠잠하던 독립 열기가 다시 지핀 이유는 고용 침체와 경제난 탓이다. 북해유전의 지분 90%를 차지한다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독립론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4세기 초 막강한 잉글랜드의 기병대에 밀렸던 저항군의 패배와 18세기 초 통합, 21세기 초 독립운동에는 한 음절의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돈'/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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