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나쁜 친구들의 꾐에 빠진 착한 어린아이다. 너무나 강력하고 나쁜 힘을 발휘하는 또래(동료) 압력은 더 강력한 또래압력만이 제압할 수 있다. 함께 몸무게를 재고, 함께 수학 문제를 풀고, 함께 축구를 하는 또래압력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명줄의 형태는 너무도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구명줄의 반대편에 누가 서 있느냐다.”(491쪽)
또래압력(peer pressure)이란 또래집단의 사회적 압력을 말한다. 그 바탕에는 이탈할 경우 발생하는 소외감과 스트레스를 피하고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고 동화되는 과정을 통해 눈높이를 맞추려는 무의식이 작용한다. 그 동안 또래압력은 사회 역기능 차원에서 조명돼 왔다. 10대 청소년들이 또래의 어투, 옷차림 등을 따라 하는 것에서 나아가 흡연, 음주, 도박에까지 빠져드는 문제의 원인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저자는 또래압력이야말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고 역설한다. 사회 문제는 집단의 구조 속에서 파악해야 할 문제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래압력의 긍정적인 부분을 강화해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래 압력의 순기능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에이즈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남아공, 1998년 급기야 청소년 에이즈 사망 가능성이 50%를 넘어섰다. 남아공은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자 최대 규모의 에이즈 예방 캠페인 ‘러브 라이프’를 시도한다. 남아공은 성관계와 에이즈의 공론화에 대해 인색하고 보수적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10대들은 에이즈 예방 캠페인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10대들에게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 모범적인 사례가 필요했고, 그 대안은 음료 광고였다. 러브라이프는 우선 ‘태도를 갖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에이즈를 음지의 언어로 굳히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유도했다. 대물림 된 가난으로 무력하고 외로운 10대에게 긍정적 소속감을 보증하는 문화 플랫폼이 돼 준 셈이다.
‘발칸의 도살자’라 불리는 세르비아 독재자 밀로셰비치를 실각시킨 민주화 운동 오트포르(otpor, ‘저항’이라는 뜻의 세르비아어) 역시 또래 압력의 순기능이 묻어나는 사례다. 오트포르는 독재자와의 차별성을 상기하며 비폭력으로 일관했다. 최신 유행의 표어, 삽화, 대중음악 등을 활용해 긴 연설 대신 정권을 조롱하는 유머와 거리 공연으로 또래 집단의 호감과 매력을 샀다. 모종의 문화 축제처럼 자리한 오토포르가 마침내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는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처럼 또래압력이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고 치유책이 되는 사례는 다양하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소속감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사회 변혁의 모든 것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변화를 꿈꾸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 대입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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