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행으로 촉발된 사형제도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인정되고 그들의 인권도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피해자의 인권은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현대인이 마주친 난제 중 하나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인간은 각자 그들에게 부여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보장받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나온다.
이 책은 인간 존엄성이라는 관념을 정의하고, 그것이 왜 인류 인권논쟁의 철학적 기초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자유가 다양한 명분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인간 존엄성'이라는 개념에서 그런 논쟁의 대답과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인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인간의 특성들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논제는 인류의 가치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선 인간 존엄성이라는 개념을 두 가지 요소로 구분한다. 우선 모든 개인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의 평등한 개인의 존엄성이다. 그는 이 같은 개인의 존엄성은 권리체계에 의해 적절히 인식되고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가 필요 이상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우려한다. 또 사형제도를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부정하는 제도라고 본다. 둘째 인류는 지구상의 다른 어떠한 종들보다 우월한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는 인류의 위상에서 나오는 인류의 존엄성이다. 인류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자연으로부터 부분적으로 결별했고 따라서 자연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존재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은 개인이나 인류 전체의 정체성에 부여된 실존적 가치라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개인의 정체성은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즉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을 때 위태로워진다. 또 개인의 정체성은 그가 단지 인류의 한 개체에 불과하다고 여겨지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로 대우를 받지 못할 때도 위협을 받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란 모든 개인이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통해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평등한 개인의 존엄성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특수성을 가진 인간의 가치들이 경시돼 인간의 존엄성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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