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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철학과 교수
미리 하면 눈치봐 창의성 사라져
사실확인, 자유토론 거쳐 결정을
소련이 달나라에 사람을 먼저 보내자 미국은 다급해졌다. 이념과 체제경쟁에서 뒤쳐졌다는 생각에 케네디 대통령은 전국민에게 비장한 각오를 밝힌다. “미국은 달에 사람을 반드시 보내겠다.” “BACK TO BASIC”도 이때 나온 말이다. 그런데,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최초로 달에 로켓을 발사할 때의 일이다. 이제 전대미문의 과업을 수행하려고 하는 데, 어떤 궤도로 로켓을 발사해야 가장 좋을까? 항공우주 국장은 최고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3개팀에게 그 계산을 의뢰한다. 그리고는 연구결과가 발표된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그 3개팀의 계산은 서로 다 달랐다. 자 여러분이 최고책임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최적의 궤도를 결정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의사결정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가장 합리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한 팀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 그런데 누가 가장 합리적인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둘째, 랜덤한 방식으로 결정할 것인가? 마치 복권 당첨자를 결정하듯이? 셋째, 가장 경험 많고 권위 있는 시니어팀의 제안대로 할 것인가? 이 역시 과학적 근거가 없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결국 NASA에서 결정한 방법은 전체 조직원들의 인기투표에서 다수를 득표한 팀의 의견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인 집단에서 더 이상의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이럴 때는 과학적 진실마저 정치적인 민주주의 투표에 따라서 결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유토론과 다수결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져야 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수의 의견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알기 위해서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99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하는 사안이 있다고 하자! 이 때 1명의 반대 목소리는 반드시 들려줘야 한다. 들어 본 즉, 그 의견이 옳은 의견으로 판명이 된다면, 우리는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칠 뻔한 것이다. 들어 본 즉, 만약 그 의견이 틀린 것이라면, 99명의 의견이 역시 옳다는 것이 재확인되는 순간이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아트 밀이 ‘자유론’에서 하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다수결로 결정하기 전에는 충분한 자유토론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NASA에서의 의사결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시사한다. 모든 것의 최종 결정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러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의견교환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어떻게 비즈니스 결정을 내리는가? 혹시 모두가 보스 한 사람의 의견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가? 리더는 회의에서 발언을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한다. 회의를 소집한 사람이 먼저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면 그날 회의는 하나마나한 것이다. 다들 의사결정권자의 입장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회의가 가장 재미없고 지루하고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먼 회의다. 그래서 매일 회의만 하는 사람들을 보고 회의주의자(SKEPTIC)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죽했으면 “부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읽히지 말라!”라고 한비자가 이야기 했을까? 상사의 마음을 읽은 부하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그저 상사의 가려운 데만 긁게 마련이다.
모든 결정에는 사실확인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전문가들의 의견이 자유롭게 발표돼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가치에 기초한 최고 책임자의 정치적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전문가들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를 꺼린다. 정치적 보복이 두려운 것이다. 전문가는 자신의 직을 걸고 사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리더는 쓴 소리를 즐겨야 한다. 리더는 조직의 나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나쁜 소실을 전하는 메신저를 환대하라! 보스와 항상 의견이 같은 사람은 조직에서 필요 없다! 리더가 의견을 제시할 때는 전문가들이 할 말을 다하고,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다 듣고 난 후가 최적기이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은 다수결을 의미한다. 만장일치는 무효다. 어떤 조직에서 만장일치가 일어날 때가 사실은 가장 위험한 때이다. 만장일치는 마치 모든 사람이 보트를 타고 가다가 벌떡 일어나서 다 같은 쪽 편에 가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51% 이상을 요구하는 어떤 절대적 다수결도 민주주의에 위반된다. 소수에게 지나친 비토 파워를 주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결국 의사결정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조직내에서 내리는 결정은 그룹지니어스의 원칙에 따라서 치열한 자유토론이 선행적으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존대말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랫사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하기가 어렵다. 어떤 CEO는 나한테 이렇게 말한다. “요즘 젊은애들 참 버릇이 없어요! 윗사람에 대한 기본예의도 안 지킵니다.” 이런 말씀을 하기 전에 혹시 나는 내 부하직원들에게 너무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의와 자유는 같이 가야 할 가치이다.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조직 내의 분위기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위기 상황 속에서 부하들이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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