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3년 만에 자국통화인 볼리바르를 미국달러화 대비 32%나 평가절하(환율인상)했다. 정부의 기습적인 통화가치 절하에 베네수엘라에서는 물가급등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상점으로 몰려드는 등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재무부는 지난 8일(현지시간) 기존 달러당 4.3볼리바르였던 정부고시 환율을 달러당 6.3볼리바르로 32% 평가절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새로운 정부고시 환율은 13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베네수엘라가 통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것은 2010년 1월 이후 처음이며 2003년 고정된 정부고시 환율정책을 도입한 이래 다섯번째다.
그동안 베네수엘라 정부는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면서 재정적자가 확대됐으며 달러화가 부족해 수입에 의존하던 생필품이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볼리바르화 평가절하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이번 조치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석유수출 대금으로 받는 볼리바르화 가치가 늘면서 정부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최대다.
현지 컨설팅 회사 에코아날리티카의 이코노미스트 아스드루발 올리베로스는 새 환율을 적용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4%(130억달러)에 해당하는 정부 순세입이 증가해 재정적자 감소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베네수엘라의 재정적자는 GDP의 7~15%에 달하고 있다.
또 달러화로 환산했을 때 베네수엘라 국가부채 규모가 429억달러에서 293억달러로 줄면서 채권발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FT는 베네수엘라 정부를 이번 평가절하 조치의 '승자'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패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남미 카니발 기간을 앞두고 전격 평가절하가 발표되면서 국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환율인상으로 수입품 가격이 올라 소비자 구매력이 8% 하락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으며 이미 20%가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 상승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소비재의 3분의1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며 국산품의 경우도 절반가량이 수입부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환율인상 전 가격으로 가전제품 등을 구입하기 위해 상점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한편 이번 평가절하폭이 너무 작아 고평가된 볼리바르화 가치를 바로잡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암달러시장에서는 8일 기준으로 달러당 19.53볼리바르에 거래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달러화 대비 9볼리바르까지 절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론상으로는 환율인상으로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겠지만 베네수엘라는 수출액의 94%를 차지하는 석유를 제외하고는 수출품목이 거의 없어 수출증대 효과도 미미하다고 FT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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