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신흥국 통화 불안은 이들 국가 리스크의 상수인 부실한 경제 펀더멘털 외에도 정정불안, 원자재 가격 하락 및 달러 강세 등 대내외적 변수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다. 더욱이 이들 국가가 지난 몇 년간 급격히 늘려온 '달러 빚'의 부채상환 비용이 높아진 것도 새로운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머징 통화의 이번 연쇄 추락을 직접적으로 야기한 것은 지난 6일 발표된 미국의 고용지표다. 실업률 등 당시 나온 미국의 고용수치가 전문가들의 기대치를 뛰어넘으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이것이 신흥국에 묻혀 있는 투자 자금의 조기 회수 가능성을 부추겼다. 2013년 중반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이른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시사' 발언이 신흥국 통화의 급락을 이끌었던 것과 사실상 같은 맥락의 시나리오다. 데이비드 헨슬리 JP모건 애널리스트가 이번 신흥국의 통화 불안을 '신흥국의 긴축 발작(Taper Tantrum) 2.0'이라 이름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2년 전 긴축 발작을 일으킨 '취약 5개국(F5, 브라질·인도·터키·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천문학적 경상적자 등 경제 펀더멘털이 주요 리스크로 부각된 데 반해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들은 이 밖에도 시장에 충격을 주는 대내외적 요인이 추가됐다는 점에서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멕시코의 페소화와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 등은 자원부국 통화로 최근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추락이 악재로 더해졌다. 반면 터키·브라질 등은 정정불안 이슈가 자국 통화 가치를 갉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는 정치 리스크 및 유가 하락으로 지난해 6월 이후 달러 대비 무려 74%의 통화(루블화) 가치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더 나아가 FT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달러강세 현상이 이들 국가를 또 다른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지난 6일 현재까지 이머징 정부 및 기업들이 발행한 달러 표시 채권은 1조7,000억달러(약 1,908조4,20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최근 통화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브라질과 멕시코, 러시아 등이 각각 1,834억달러, 1,291억달러, 1,24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해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달러화 채권을 발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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