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속담은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그 나름의 쓸 데가 있다는 뜻이 담겼다. 장자 인간세(人間世)편에 나오는 '무용지용(無用之用)'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 주위를 관심 있게 살펴보면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술가들은 버려진 폐품을 재료로 써서 예술성 있는 조형작품으로 재창조한다.
1950년대 이후 본격 등장한 이런 시도는 정크아트(Junk Art)로 불리며 당당히 하나의 현대미술 사조로 인정받고 있다. 감성에 호소하는 미술뿐만 아니라 이성에 바탕을 둔 '기술'에서도 무용지용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인의 눈높이로 보기에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기술이 지역과 대상에 따라서는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여주는 '따뜻한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필리핀의 사회적 기업인 '마이셸터재단(My Shelter Foundation)'이 빈민가의 어두운 낮을 밝히기 위해 펼치고 있는 '리터 오브 라이트(Liter of Light)' 캠페인이 이러한 마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재단은 전기를 켤 수 없어 한낮에도 어두운 실내에서 생활해야 하는 빈민가에 '햇빛 페트병 전구'를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전구는 전 세계적으로 1년에 1,600억개가 생산되고 상당수가 그냥 버려지는 페트병을 활용해 만든다. 투명한 1.5리터 페트병에 약간의 표백제를 넣고 물을 채운 뒤 밀봉하면 낮에 쓰는 전구로 변신한다.
이 페트병 전구를 빈민가의 함석집 천정에 구멍을 뚫고 설치하면 햇빛이 페트병을 통과하면서 굴절·반사돼 집안을 환하게 비추는데 밝기가 55와트에 달한다고 한다. 이 캠페인은 필리핀은 물론 방글라데시·우간다 등 17개국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 기술이 부족함 없이 전기를 쓸 수 있는 사람에게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최빈국의 빈민 가정에는 전기 전구를 대체하는 '쓸모있는 적정 기술'이 된 셈이다.
특허청은 2009년부터 저개발 국가에 적합한 '적정 기술'을 발굴해 현지에 맞도록 개발하고 이를 전수하는 '지식재산 나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아프리카 차드의 조리용 숯 제조 기술, 캄보디아의 가정용 정수기, 네팔의 단열 대나무 주택 등을 개발해 해당국의 현지민과 관련 단체에 제공했다.
특허청은 올해 지식재산 나눔 사업의 방향을 '사업화와 현지화'로 잡고 있다. 지난해 말 필리핀 농가에 보급한 '일랑일랑 오일 추출기'의 경우 필리핀 지방정부가 사업화 의사를 표명해 현지화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적정 기술에 기반한 지식재산 나눔 사업은 '착한 기술, 따뜻한 기술'로 불리고는 한다. 지구촌에 함께 사는 우리의 어려운 이웃 국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듯 적정 기술이 좀 더뎌도 인류가 함께 가게 하는 삶의 기술이 됐으면 한다. 특허청도 지식재산 나눔 사업을 보다 내실 있게 추진해 '따뜻한 지구촌'을 만드는 데 일조하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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